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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대중가요의 역사 8부

1970년대 vol.4

 

 

록 밴드 출신 리드보컬이 솔로로 독립하여 트로트 선율과 록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결합한 이른바 ‘트로트 고고’ 작품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히식스 출신의 최헌의 '오동잎' ,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 등이 대표적이며,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조용필 역시 이 부류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MBC대학가요제’, ‘TBC해변가요제’ 등의 대학생 중심의 가요제를 통해, 밤무대 출신의 시대에서 캠퍼스 밴드의 시대로 옮겨가는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197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등장한 각종 가요제는 잠시 주춤하던 가요계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며 사랑과 평화, 산울림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그룹사운드의 전성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대학가요제는 문화방송에서 1977년 9월에 시작한 대학생 대상의 창작가요 경연대회. 1977년 '나 어떡해'를 부른 서울대학교 그룹사운드 샌드페블즈가 대상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대학가요제는 지난 20여년 동안 젊은이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스타들의 등용문이 되어왔다. 당시의 억눌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응축된 젊은이들의 열정과 재능이 한꺼번에 분출했던 축제가 바로 대학가요제였다. 일회성으로 그칠 것 같았던 대학가요제는 새로운 시대의 음악 패러다임을 형성했다.

 

1977년에 개최된 제1회 MBC 대학가요제는 학생들의 창작곡 외에도 번안곡들도 많이 참가하였으나, 그 뒤 회를 거듭하면서 차츰 자작곡으로만 채워지게 되었다. 1회때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가 대상을 차지했는데 이듬해 3월, 해당 대회의 입상곡들이 2장의 LP로 제작됐다. 이 과정에서 음반을 2장 분량으로 내면서 수록곡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발생했고 부족한 곡 수를 채우기 위해 가요제와 무관한 노래들을 삽입했다. 대표적으로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가 ‘나에게도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고, 이외에도 ‘개구리와 두꺼비’의 '하얀 파도', ‘김종호와 북두칠성’의 '밤하늘 별이 빛나고' 등이 같은 방식으로 실렸다. 

 

 

 

 

1978년 제2회의 경우 심민경이라는 본명으로 출장한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임백천과 고영선이 불렀던 '한마음', 노사연의 금상곡 '돌고돌아 가는 길', 그룹 활주로의 은상곡 '탈춤'은 대상곡이었던 부산대 중창단팀 썰물의 '밀려오는 파도소리에'를 압도하는 인기를 누렸다. 특히, 심수봉의 '그 때 그 사람'은 본선에는 진출하였으나 당시 대학가에서 유행했던 통기타 음악과는 리듬과 정서가 사뭇 다른 트롯트풍이어서 수상을 하지는 못했으나 오히려 대학 밖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고, 10 · 26사건과 연관되어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가로 떠오르기도 했다.

 

 

 

 

대학가요제는 기성 가요제의 저변이 넓지 않았던 시절, 신선한 노래와 얼굴들을 잇다라 배출함으로써 건강한 대학문화의 산실이 되어왔다. 전성기였던 1980년대 중반까지는 출전 자체만으로도 소속대학의 스타가 되었을 정도였다.
노사연 · 배철수 · 신해철 · 심수봉 · 유열 · 이정석 · 조하문 등 많은 가수들이 대학가요제를 통해 스타로 입문했다.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 '돌고돌아가는 길' · '그때 그사람' · '해야' · '참새와 허수아비' 등의 히트곡이 나왔고 이들 노래는 대학가뿐 아니라 중 · 고교생과 일반인들에게도 폭넓게 애창되었다.

 

 

 

 

1977년 처음 열린 MBC 대학가요제가 큰 인기를 넘어 젊은이들 사이 문화적 신드롬을 일으키자 1978년 동양방송(TBC) 라디오에서 이를 본떠 제1회 ‘해변가요제’를 만들어 개최했다.

 

 

 

징검다리 - 여름

 

이 대회에서는 현재까지 인기를 누리는 명곡들이 많았는데  최우수상은 징검다리의 '여름'인데 팀에는 당시 한양대학교 2학년생인 왕영은이 참가했으며 한국항공대학교 밴드 활주로의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 우수상을 받으며 리더였던 배철수는 같은 해 MBC 대학가요제에도 다시 출전해 '탈춤'으로 은상을 거머쥐었고, 우수상에는 홍익대학교 밴드 블랙테트라의 '구름과 나'가 받았다 . 추후 블랙테트라 멤버였던 구창모와 배철수는 같이 송골매를 결성한다. 인기상에는 휘버스의 '그대로 그렇게'와 듀엣으로 참가한 벗님들의 '그 바닷가' , 블루드래곤의 '내 단하나의 소원'이 받았다. 벗님들의 이용균(이치현의 본명)은 나중에 '이치현과 벗님들'을 결성해 '집시여인'과 같은 많은 히트곡을 냈다. 블루드래곤에는 '김성호의 회상'으로 유명한 김성호가 참여했으며 장려상에는 장남들의 '바람과 구름'이 받았다, 개그맨 주병진도 친누나와 함께 참가하여 장려상을 받았다.

 

 

활주로 -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1979년 제2회 대회부터는 무대를 해변에서 세종문화회관으로 옮기고 라디오가 아닌 TV로 방영하면서 대회 명칭도 ‘젊은이의 가요제’로 바꾸었다. 참가 자격은 대학생 외에도 ‘고졸 이상 만23세 미만의 남녀’로 대학가요제보다 문호가 넒었다. 우수상 수상곡인 라이너스의 '연'은 지금까지도 널리 애창되는 2회대회의 최고 인기곡이다. 이외에도 잘려상을 받은 라스트 포인트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인기상에 블랙 테트라 3기의 '심메마니'가 받았다 

 

라이너스 -연

 

1980년 제3회 대회는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대상곡인 로커스트의 '하늘색 꿈'은 박지윤이 97년에 리메이크하여 친숙한 곡이며, 금상에는 건국대학교 팀인 옥슨80의 '불놀이야'가 받았다. 옥슨80 출신의 홍서범이 데뷔한 무대다. 동상에는 건아들 2기의 '젊은 미소'가 받았다. 동상을 받은 종이비행기의 '우리들의 겨울'은 경쾌한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로커스트 (Locust) - 하늘색 꿈

 

제3회 대회 이후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TBC가 문을 닫으면서 대회도 없어졌으나, 1981년 국풍81 행사의 일환으로, TBC를 흡수한 KBS의 주최로 ‘국풍81 젊은이의 가요제’가 개최되었고 이것이 마지막 대회가 되었다. 이 대회에서 대상은 '학'을 부른 서울대학교 밴드인 갤럭시가 수상했으나, 사실상 최고상 대접을 받은 것은 금상을 수상한 이용의 '바람이려오'였다. '국풍81 젊은이의 가요제' 앨범은 1집과 2집의 두 장으로 발매되었는데, 금상 '바람이려오'가 1집 A면 첫 곡으로 들어가 있고, 은상/동상/입상도 모두 1집에 수록돼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2집에는 대상 수상곡인 '학'이 A면 첫곡이고 나머지는 본상을 수상하지 못한 노래들로 채워져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국풍81

 

 

 MBC 강변가요제는 MBC가 매년 여름 북한강 강변에서 열던 경연대회로 대학가요제와 함께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에 가요제 양대산맥으로 기능하며 수많은 스타들과 명곡을 쏟아내었다. 1979년부터 시작돼 2001년에 대학가요제와의 통폐합에 따라 개최를 영구 중지했다. MBC 대학가요제와 더불어 국내 대표적인 가요 경연대회로 명성을 떨쳤다. 실제로 이 대회를 통해서 가요계 스타로 발돋움한 이들도 꽤 된다.

 

 

 

 

1979년 1회 대회에서는 홍삼트리오의'기도'가 금상을 받았으며 1984년 대상 'J에게'의 주인공 이선희와 1988년 대상 '담다디'라는 곡으로 단박에 스타덤에 올랐던 이상은, 1999년 제20회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던 장윤정등이 있다. 이외에도 1983년 대상 손현희의 '이름 없는 새', 1986년 대상 유미리의 '젊음의 노트'등이 인기를 끌었다. 처음에는 대학생 중심의 가요 경연대회로 기획됐다가 1999년부터는 참가자들의 폭을 넓히자는 취지에서 학력 제한을 철폐한 바 있었으나 그 뒤 인기가 떨어지면서 2001년을 끝으로 22년 간의 역사를 마감했다. 

 

 

 

1977년 5월 28일, 문화방송은 해외가수를 초청하여, '가수들의 올림픽'이라 불리었던 서울가요제를 개최하게 된다. 참가 기준에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을 두지 않아 다양한 곡이 출품되긴 했지만, 기성 작곡가들이 다크호스로 등장하여, 세계 가수들의 등용문으로 자리잡았다. 최초로 '가요제'란 이름을 사용했던 서울가요제는 1978년에 서울국제가요제로 이름을 변경하여 참가자격을 아시아 9개국으로 확장시켰다. 글로벌 시대에 트랜드에 맞춰 가요의 질적 향상을 도모한다는 모티브로 시작된 본 행사는 비슷한 국제 가요제를 양산하는 시초가 되었지만, 형평성 논란이 겹친데다, 막대한 개최비용으로 인해 1986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폐지하였다. 
77 MBC 서울가요제에서는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인기상에 혜은이의 '당신만을 사랑해'가 받았으며 78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는 박경애의 '곡예사의 첫사랑'이 최우수 국내작곡상을 받았다. 79 MBC 서울국제가요제에서는 대상을 윤복희의 '여러분'이 받았다. 

 

 

윤복희 - 여러분

 

 

정훈희는 1970년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 참가하여 '안개'로 참여하여 한국어 가사로 불러 베스트 10에 선정되었다.
1972년 제3회 대회에는 '좋아서 만났지요'를 가지고 참가하여, 입선과 함께 우수가창상 및 작곡가 상을 수상하였다. 1972년 개최된 아테네국제가요제에는 '너'를 가지고 참가하여 유일한 아시아 수상자가 되었으며 1975년 칠레 가요제에서는 '무인도'로서 3위 상과 최고 가수상을 동시에 받았다. 1979년 제20회 칠레가요제에 다시 출전하여 꽃밭에서를 스페인어로 번안한 <Un Día Hermoso Como Hoy> (오늘처럼 아름다운 날)를 불러서 최우수 가수상을 수상한다.

 

정훈희 - 무인도

 

 

박경희는 1974년 한국가요제에서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라는 곡으로 대상 수상하였으며 1978년 동경가요제에서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으로 동상을 수상하였다. 

 

 

 

 

1972년을 전후한 시기에 남진은 ' 임과 함께 '로 나훈아는 ' 물레방아 도는데 '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그러나 이들은 초기와는 달리 이농민이나 시골사람의 경험과 취향에 머무는 모습을 보였고, 대부분의 트로트 히트곡이 이런 특성을 보였다.  

 

 

이미자 - 여로

 

이미자는 60년대 전성기에 이어 1970년에도 TBC 동양방송 드라마 <아씨>의 주제가였던 '아씨' 가 크게 히트하였으며 1972년에는 KBS의 드라마 〈여로〉의 주제가 이었던 '여로' 도 큰히트를 기록하면서 인기가 지속되었다. 

 

 

 

 

​1967년 21살의 나이에 ‘인정 많은 아저씨’로 공식 데뷔한 이후 송대관의 무명가수의 배고픈 시절은 10여 년간 지루하게 이어졌다. 1975년 희망에 대한 자기 최면을 걸었던 노래 '해뜰날'은 발표 1년 만에 그를 '가수왕'으로 등극시켰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마초 파동으로 중요 가수들이 모두 사라진 무주공산 시대의 최대 수혜자인 이 노래도 힘겨운 삶을 표현한 가사 일부를 수정해서 심의를 통과했던 아픔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제이 가일스 밴드(J. Geils Band)는 1982년 2월 6일부터 6주간이나 빌보드차트 1위를 점령시켰던 ‘Centerfold’의 후렴구에서 ‘해뜰날’을 표절한 의혹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있다.  당시 밴드의 리더가 주한미군으로 근무했다는 전력이 확인되면서 의혹설은 더 큰 설득력으로 이어졌다.

 

 

심수봉 - 그때 그사람

 

'그때 그 사람' 의 히트로 1979년 한 대중매체의 대중가수 인기조사에서 심수봉은 신인가수로는 이례적으로 4위에 등극했다. 이 노래는 문병을 갔다 친구의 남자 친구가 기타를 쳐주는 모습을 스케치한 심수봉의 창작곡이다.
입상에는 실패했지만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은 1979년 스플릿 독집이 나오자마자 전국을 강타했다. 단숨에 MBC TV 금주의 인기가요와 TBC TV 가요 베스트7의 정상에 등극하면서 MBC 10대 가수상, TBC와 KBS신인가수상을 휩쓸며 정상의 가수로 떠올랐다. 심수봉은 가수로서 최정상을 인기를 누렸지만 10.26사건에 연루된 '그 때 그 여인'으로 비련의 주인공이 되었다.

 

 

4월과 5월 -화

 

70년대는 남진, 나훈아로 대표되는 트로트 음악에 김민기, 양희은을 비롯한 한대수, 서유석, 송창식, 김정호 등의 싱어송라이터의 등장과 둘 다섯, 4월과 5월, 논두렁 밭두렁, 어니언스 등 듀오의 활동도 활발했다. 60년대 활동하던 그룹사운드를 이끌던 보컬들은 솔로로 활동을 계속하는데 윤항기, 최헌, 김훈, 조경수, 장계현 등이 대표적이다. 가수들의 등용문도 미8군이나 방송사의 의존도에서 음반사와 기획사에 의해 이루어 지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다양한 장르의 가수 등장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어니언스 - 편지

 

 

9부에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중음악의 이해』(김창남 외,한울,2012)
『아이돌』(이동연 외,이매진,2011)
『한국대중가요사』(이영미,민속원,2006)
『한국 팝의 고고학』 1·2(신현준 외,한길사,2005)

『식민지시대 대중가요 연구의 쟁점과 그 의미』(이영미,김시업 외)

『 근대의 노래와 아리랑』(소명출판,2009)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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