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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대중가요의 역사 9부

 

 

1980년대 vol.1

 

 

 

조용필 - 돌아와요 부산항에

 

1980년대는 트로트,발라드, 록, 댄스음악까지 다양한 쟝르의 음악이 공존하던 시기였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가왕이라 불리우는 조용필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조용필은 1969년에 화이브 핑거스를 결성하여 미 8군 무대에 데뷔하였다. 1971년, 김대환, 조용필, 최이철을 주축으로 결성된 3인조 음악 그룹 김트리오로 본격적인 락 음악 활동을 시작하였다. 26세가 되던 1975년에 솔로로 전향하여 발표한 트로트 음악,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후 처음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당시 재일교포 고국방문과 맞물려 발표된 이 노래는 부산에서부터 인기가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퍼졌고, 조용필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1977년 대마초 파동에 휘말 공백기를 갖게 되고, 해금 조치 이후 지구레코드와의 전속으로 1979년에 현재의 그룹 위대한 탄생을 결성하고 공식적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정규 1집 음반 수록곡 '창밖의 여자'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대한민국 최초로 100만장 이상 팔린 음반이다.  80년대를 화려하게 열였던  '창밖의 여자'는, 익숙한 60년대식 단조 스탠더드팝의 선율을 기본으로 하여 록을 결합시키면서, 록의 특성을 화려한 화성과 선율로 감싸 안았다. 

 

 

조용필 - 창밖의 여자

 

 

그 결과 장년층에까지 익숙한 비극적 정조에 록적인 강렬함을 더한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내었고, 이후 '비련', '촛불', '못 찾겠다 꾀꼬리'를 거쳐 '눈물의 파티', '마도요'에 이르기까지 히트를 계속하며 80년대의 주도적 경향으로 굳혀 나갔다. 또한 이러한 주도적 경향 외에도, 모던록 '단발머리', '너무 짧아요'에서부터 정통 단조 스탠더드팝 '정', 트로트 '일편단심 민들레야', '미워 미워 미워', '허공', 민요를 리메이크한 '한오백년'에 이르기까지, 포크를 제외한 한국대중가요사의 전 양식을 망라한 작품세계를 동시적으로 보여주었다. 

 

 

 



따라서 조용필은 10대부터 중노년층에 이르는 거의 모든 세대를 수용자로 끌어안았으며, 싱어송라이터로서 어느한가지 쟝르에만 집착하지 않는 대중지향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전반적으로 자신의 작품과 밴드 위대한탄생 멤버들의 작품, 유명 기성 작곡가의 작품까지 고루 수록했다. 그는 록, 발라드, 트로트까지 두루 아우른 백화점식 장르 안배를 고수했는데, 이는 조용필 특유의 앨범 제작 방식이자 성공 공식이었다.

 

 

 


1집부터 10집 파트2(11집)까지 지구레코드와 10년 계약을 맺고 앨범을 발매했던 조용필은 자신의 기획사 YPC프로덕션을 세웠으며 1990년대를 지나 2013년 발표했던 19집의 수록곡 'Bounce'의 대히트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용 - 잊혀진 계절

 

이용은 1981년 국풍81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바람이려오'로 금상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처음 알렸다. '바람이려오오'는 《가요톱10》 (KBS 2TV)에서 4주, 《금주의 인기가요》 (KBS 2FM)에서 7주, 《세븐턴》 (CBS 라디오)에서는 18주째 1위로 랭크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이용은 10대의 우상으로 발돋움했다. 이후 '잊혀진 계절', '서울', '사랑과 행복 그리고 이별' 등을 히트시키면서 한때 조용필에 버금갈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특히 1집 〈잊혀진 계절〉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곡은 지금도 10월 말만 되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주 신청곡으로 들어오는 곡으로 유명하다.  
이 앨범으로 1982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수상을 수상했고 '잊혀진 계절'은 최고 인기가요에 선정되었다. 1982년 1년간 라디오 방송에 나온 가요 순위를 집계한 결과 곡별 순위에서 <잊혀진 계절>이 1위를 차지하고, 가수별 순위에서 조용필에 이어 이용이 2위를 차지했다.

 

 

최성수 - 동행

 

최성수는 김범룡, 전영록, 조용필, 이선희 등과 함께 1980년대 대중가요계를 이끌었던 인물로 당시의 많은 가수들처럼 출중한 가창력을 지녀 명성이 높았다. 그리고 앨범의 수록곡 대부분이 자작곡이었을 정도로 싱어송라이터로서도 유명했다. 게다가 수려한 외모로 여성 팬들에게 특히나 인기가 많았다. 1983년 '그대는 모르시더이다' 로 데뷔하였다. 대표곡으로는 '기쁜 우리 사랑은', '풀잎사랑', '동행', '해후', '애수', '남남', '그대는 모르시더이다' 등이 있다. 대부분의 곡들이 아직까지도 중장년층의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는 중이다.

 

 

 


김범룡은 1982년 연포가요제에서 보컬 듀오 "빈 수레"로 활동했고, 자작곡 '인연'으로 가요제 우수상을 수상하며 프로 가수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25세 때인 1985년, 1집 <바람 바람 바람>을 통해서 솔로 가수로 데뷔,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순식간에 인기 가수로 급부상 하게 된다. 타이틀곡 '바람 바람 바람'은 KBS 가요톱10에서 무려 5주 연속 1위로 골든컵을 수상하며 가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후 1988 서울 올림픽의 개막식 간 선수단 입장곡으로 사용되며 대한민국의 1980년대를 대표하는 명곡으로서의 지위를 인정을 받았다. 그 이후에도 3집 앨범의 수록곡 '카페와 여인'이 골든컵을 수상하는 등의 실적을 올렸으며, 1985년에는 KBS 가요대상 신인가수상을 수상, 1986년에는 MBC와 KBS에서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는 등 꾸준한 인기를 자랑하였다.

 

 

 

전영록은 1971년 CBS 라디오 프로그램 <영 페스티벌>에 출연하면서 데뷔했다. 1975년 데뷔앨범을 발표하여 '애심'을 히트시켰다. 그뒤 영화와 가수활동을 겸했던 그는 1982년 6집 '종이학'의 대히트로 이후 발표한 앨범마다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면서  198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한 스타 중 한 명이었다.  1983년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1984년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1985년 '내사랑 울보'등의 히트곡을 가지고 있다. 여러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여 배우로서 활동했으며 대표작으로 <돌아이>등이 있다.

 

 

아상우 -슬픈 그림같은 사랑

 


1980년대 전반기는 조용필의 주도 속에 록적인 강렬함이 주도했다면, 1985년을 계기로 좀 더 섬세한 내면을 화려한 선율과 화성을 노래하는 작품들의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언더그라운드라 할 수 있는 '사랑하기 때문에'의 유재하, '난 모르잖아요', '사랑이 지나가면'을 부른 이문세의 인기를 거치며 섬세함과 화려함이 깊어졌고, 1988년 변진섭을 계기로 발라드의 전형적인 모습이 완성되었다고 보인다. 이후 '슬픈 그림 같은 사랑'의 이상우, '마지막 콘서트'의 이승철,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의 신해철, '이별의 그늘'의 윤상, '미소 속에 비친 그대'의 신승훈에 이르렀다.

 

 

 

 

유재하는 한양대 재학 중이던 당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디스트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조용필의 일본 공연 동행에 필요한 학교의 허가를 받지 못하여 2개월만에 위대한 탄생에서 탈퇴하게 된다. 조용필 7집에  '사랑하기 때문에'를 먼저 취입하기도 했으며 1986년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 키보디스트로 입단하였으나 1986년 11월 밴드에서 나온 후, 유재하는 자신이 모든 곡의 작곡, 작사, 편곡을 한 솔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제작, 1987년 8월에 서울음반을 통해 내놓는다. 차츰 그의 노래는 라디오를 통해 청취자들의 반향을 일으키며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이문세가 진행하는 MBC 라디오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는 한 주간의 신청 엽서와 방송 횟수를 집계해 가요 순위를 선정하는 '별밤 차트'란 코너가 있었는데, '지난날'이 장기간 1위를 질주하기도 했었다. 25세의 짧은 생애 동안 단 1개의 앨범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럼에도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데뷔작이자 유작인 사랑하기 때문에가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의 방향성에 끼친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2018년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서도 이 앨범을 1위로 놓으며,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중요한 단일 작품'이라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오늘날 들어도 훌륭한 세련미와 단아함을 지녔으며, 어눌하지만 정직한 보컬, 절제를 아는 세션, 간결하고 담백한 노랫말, 사색적 분위기 등이 고루 인상적이다. 

 

 

 

이문세 - 난 아직 모르잖아요

 

이문세는 1983년 <나는 행복한 사람>과 1984년에 2집 <파랑새>를 발표하였으나 직후에는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의 가수로서 성공은 1985년 당시 은인과도 같은 작곡가 이영훈을 만나게 되면서 꽃피운다.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라는 곡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 해 방송 순위 1위에 오르며 인기 가수 대열에 오른다. 이때부터 이문세-이영훈 둘의 콤비 체제는 1980년대의 가요계에 팝 발라드 음악을 널리 알렸다. 1987년에 발표한 4집 수록곡 중 대다수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높은 판매고를 올렸고, 팝 발라드 음악 가수로서 인기를 확고히 했다. 1993년부터 자신의 음악 동반자였던 이영훈과 결별하고, 그때부터 자신만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만들고자 발판을 다졌으나 그 변신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한다. 1996년에 발표한 '조조할인'을 통해 본격 음악적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1998년에는 이문세 자신이 가사를 직접 작사하고, 가수 겸 작곡가 조규만이 작곡하면서 받은 노래인 타이틀곡 '솔로 예찬'을 발표했다. 

 

 

 

변진섭- 홀로 된다는 것

 

변진섭은 1987년 MBC 신인가요제 '우리의 사랑 이야기'로 데뷔했다. 1988년에 1집 <홀로 된다는 것>을 발표, '홀로 된다는 것', '너무 늦었잖아요', '새들처럼',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랑뿐' 등이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데뷔 앨범부터 큰 인기를 받았다. 이 앨범은 18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1988년에 '홀로 된다는 것'으로 남자부문 신인상, 1989년에 '너무 늦었잖아요'로 대상을 수상하여 데뷔 앨범 하나로 신인상과 대상을 거머쥔 첫 가수였을 만큼 당시의 인기는 상당했다.
1989년에 발표한 2집으로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하여 2년 연속 대상 수상이라는 기염을 토해 냈던 그의 최고의 대표작 2집 <너에게로 또다시>는 '너에게로 또다시',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희망사항', '숙녀에게'가 차트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으며 '당신의 장난감 당신의 인형', '로라' 등 앨범에 수록된 전곡이 차트 순위권을 석권했다. 특히 '희망사항'은 쇼 네트워크 6주 연속 1위, 가요톱텐 골든컵(5주 연속 1위)까지 수상하면서 이문세 이후 차세대 발라드의 황태자로 통했다. 공식 집계만 280만 장 이상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변진섭 - 너에게로 또다시

 

 

70년대 대학가요제의 인기는 80년대에도 이어져 많은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강변가요제가 그역확을 톡톡히 해내었는데 이선희를 필두로 이상은, 유미리, 박미경, 권진언, 이상우, 박선주 등 많은 스타가수를 배출해 내는 역활을 해내였다
또한 국풍 81에서 금상을 받으며 해성같이 등장한 이용은 한때 조용필과 대적할정도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선희 - J에게

 

이선희는 1984년 MBC 강변가요제 대상 출신으로  'J에게', ' 아! 옛날이여', '알고 싶어요', '나 항상 그대를', '아름다운 강산', '추억의 책장을 넘기면', '인연',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등의 히트곡을 가지고 있다. 이선희는 양대 방송사 신인상 석권, MBC 최초 3관왕, KBS 올해의 가수상 6회 연속 수상, MBC 10대 가수상 6회 연속 수상, 골든디스크상 5회 연속 수상, 7곡으로 26회의 KBS 가요톱10 1위를 차지해 당대 여가수 중 최다 1위 기록을 남겼다. 또한 이선희는 1980년대에 발매하는 앨범마다 히트하며 1984년부터 1990년까지 6년 연속으로 가요톱10 차트 1위곡을 보유했다. 최초의 언니부대를 탄생시키면서 대중성과 가창력의 조화를 이뤘다.

 

 

 

 

송골매는 활주로 출신의 배철수를 중심으로 1979년 결성되었고, 1978년 제 2회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던 지덕엽과 이응수, 이봉환을 영입하여 시작되었다. 1979년에 발매한 송골매 1집은 '세상만사',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 수록되었으나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블랙테트라 2기 보컬 구창모와 기타리스트 김정선, 베이스의 김상복, 드럼의 오승동, 키보드의 이봉환을 영입하여 이들의 황금기 라인업으로 1981년에 발표한 송골매 2집은  '어쩌다 마주친 그대' 라는 곡으로 송골매의 침체기를 한번에 뒤집어 버린다. 이 곡은 전체적으로 Funk를 기반으로 한 디스코-락 넘버이다.

 1983년에 발표한 송골매 3집은 전작에서의 인기를 또 한 번 실감하듯 '처음 본 순간' 과 '아가에게', '빗물', '한줄기 빛' 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 송골매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당시 송골매를 주연으로 한 영화가 줄줄이 개봉되었을 정도였다. 송골매 멤버들이 주연을 맡은 1982년작 <갈채>와 1983년작 <송골매의 모두 다 사랑하리>가 영화로 제작 되었다. 그러나 1984년 당시 기획자로부터 솔로 가수 제의를 받은 구창모가 탈퇴하면서 4집활동에 적신호가 켜진다. 이후 발매하는 앨범들은 이전의 성공을 기대하기어려웠다. 

 

 

 


김수철은  밴드 '작은 거인'으로 TBC 동양방송에서 개최한 1979 전국 대학축제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일곱 색깔 무지개'로 금상을 수상한다. 1983년 팀이 해체되고 솔로 1집을 냈다. 여기에 수록되었던 '못다 핀 꽃 한 송이', '별리', '내일' 등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이듬해 가수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 등 2, 3집 수록곡들이 대박을 잇달아 터뜨리면서 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떠올랐다. 90년대 들어서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곡인 '치키치키차카차카'를 만들고 부른 것으로 인기를 얻었다. 

10부에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중음악의 이해』(김창남 외,한울,2012)
『아이돌』(이동연 외,이매진,2011)
『한국대중가요사』(이영미,민속원,2006)
『한국 팝의 고고학』 1·2(신현준 외,한길사,2005)

『식민지시대 대중가요 연구의 쟁점과 그 의미』(이영미,김시업 외)

『 근대의 노래와 아리랑』(소명출판,2009)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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