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영록은 1954년 서울에서 당시 대한민국의 배우 황해, 가수 백설희 부부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1971년 기독교방송 영 페스티벌로 첫 방송을 탔으며 본격적인 활동은 1973년 MBC 드라마 <제3교실>에 출연하면서부터인데, 이 드라마에서 삽입곡 '편지'를 부른 것을 계기로 1975년 가수로 본격 데뷔하였다. 이후 임예진, 김보연 등과 짝을 이뤄 청춘 영화의 주인공으로 단골 출연하였다.

전영록이 1975년 7월 발표한 데뷔 앨범 <전영록 매혹의 새 노래>는 ‘나그네 길’을 타이틀로 했지만 수록곡인 “애심”이 크게 히트하면서 그의 초기 히트곡 중에서는 대표곡으로 팬들에게 인식되었다. 이 곡의 원제목은 ‘사랑하는 여인아’ 였으며 김용기 작사 작곡으로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고 떠나보낸 아픔을 절제된 감정으로 담아 노래 한 곡이라고 한다.
'애심'은 발표 당시에는 별 반응이 없었으나 이노래가 대중에 관심을 끌며 크게 히트한 것은 발표 이듬해인 1976년 영화 <제7교실>의 주제가로 사용되고 나서이다.
전영록 특유의 감미로우면서 호소력 짙은 음색과 절제된 애절한 창법으로 사랑의 아픔을 담아낸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의 "애심"은 연인과의 이별을 겪은 청춘들이라면 누구나 "내 마음을 그대로 불러주는 노래 같다"라며 당시 많은 청춘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였다.
1976년 4월에는 박인희, 정종숙, 버들피리 등과 함께 한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 앨범에는 그의 데뷔앨범 히트곡인 ‘나그네길’과 “애심”을 포함하여 5곡을 재수록하였고, 신곡으로 자작곡 ‘그날이 오면’, ‘사랑의 종’, 그리고 김갑춘 작곡의 ‘철 지난 바닷가’를 수록하였는데 이 곡들도 팬들에게 사랑받은 포크 발라드곡들로 전영록 주연의 영화 <내 마음의 풍차>의 주제가로 쓰였던 곡들이기도 하다.
연예계 대마초 파동이 일기 시작하자, 아버지 황해가 1976년에 군대를 그것도 전방으로 보내버렸다고 한다. 물론 3년 동안의 공백기간이 연예인으로서의 생명력을 영영 앗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로 결단을 내려 1976년 10월 21일 가수 전영록이 아닌, 배우 전영록도 아닌 육군 이등병 전영록으로 논산훈련소에 입소하였다.
복무중이였던 기간인 1977년 12월에 2집 앨범 <전영록 매혹의 새노래 모음 Vol.2>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에서 특별한 히트곡이 나오지 않았다.
3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연예인으로 돌아온 전영록은 1979년 영화 <모모는 내사랑>에 출연했다. 그와 함께 영화의 삽입곡 '누군가'가 담긴 3집 앨범 <새로운 모습의 전영록 노래모음>을 발매했으나 그것 역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 앨범에서는 팬들의 사랑을 받은 2곡이 있었는데 ‘누군가’와 ‘가버린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앨범의 타이틀로 당시 자주 방송에 나왔던 곡들이었는데, 수록곡 ‘가버린 사람’은 그 시기에 개최된 강변가요제에서 인기상을 받은 그룹 장남들의 인기상 수상곡 ‘여름바다’와 원곡 논란이 있었던 곡이었다. 결국 전영록의 곡이 근소한 차이로 앞선 원곡이 되었고, 전영록이 만든 곡으로 저작권 논란이 마무리된 바 있다.
1980년 5월에 발표한 4집 앨범 <젊은이의 벗 전영록 신곡모음>에서는 ‘만나려는 마음’이 팬들의 사랑을 받은 바 있는데, 이 곡은 소월의 시에 김용욱이 곡을 붙인 곡이다.
1981년 5월에 발표한 앨범<애원/그대여>에서는 ‘애원’과 ‘그대여’가 팬들의 사랑을 받은 곡으로 거의 발표하는 앨범마다 팬들의 공감을 사게 되지만 이 앨범은 그가 미리 녹음해 둔 곡으로 그가 군에 간 사이 발표된 곡으로 판단되며 이 곡으로 활동은 사실상 없었다.
지나간 시절의 연가
그는 군복무 이후 공백기 동안 이렇다할 활동은 없었는데, 1982년 6월에 발표된 앨범 <지나간 시절의 연가/종이학>은 그의 재기 앨범으로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앨범으로 거듭난다.
수록곡 전곡을 작사가 이건우와 작곡가 이범희 콤비가 만든 이 앨범에서는 젊은 층에 큰 사랑을 받은 곡들이 대거 수록되어 성공적인 재기로 전영록의 건재함을 과시한 앨범이 된다. 애절한 발라드 곡 ‘지나간 시절의 연가’, ‘그대 뺨에 흐르는 눈물’. '종이학', ‘꼬꼬’, ‘만남에서 헤어짐까지’가 모두 이 앨범에 수록되어 발표된 곡들이었다.
이 앨범 발표 전 전영록은 82‘ 서울국제가요제에 출전한 바 있는데 당시 출전곡이 ‘지나간 시절의 연가’였고, 이 곡으로 그는 금상과 빌보드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 곡을 이 앨범에 타이틀곡으로 수록한 것이다.
수록곡인 '종이학'은 슬픈 사연을 간직한 곡인데, 그가 군복무 시절 ‘정아’라는 소녀에게 매주 종이학이 들어있는 팬레터를 받았다고 한다. 내용에는 자신이 불치병으로 5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연이 적혀 있었는데 3개월 뒤에 팬레터가 끊겼다고 한다. 얼마 후 그 소녀의 친구가 종이학과 함께 보내온 편지에는 정아가 하늘나라로 갔고, 앞으로는 정아 대신 자신이 학을 보내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전영록은 이 사연을 작사가 이건우에게 이야기 했고, 이건우는 이 사연을 담은 가사말을 만들어 이범희가 곡을 붙여 나온 곡이 바로 '종이학'이었다. 이것이 당시 전영록 팬클럽인 <천학클럽>을 결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당시 신청곡이 엄청났던 곡이었다.
데뷔한 뒤 포크송으로부터 시작해서 주로 포크 발라드계의 곡들을 불러왔던 전영록은 제대 후 발표한 앨범에서부터 음악의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종이학', ’꼬꼬' 등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곡들이 발표되면서 청소년들의 감성을 불러일으키게 하는데, 1983년 11월에 발표한 앨범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그대가 미워요>에서는 흥겨우면서도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팬층이 다양해짐을 확인해 준 곡들을 다수 수록하여 발표한다.
이 앨범 수록곡 중 최대 히트곡인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와 ‘그대가 미워요’는 청소년 층의 절대적인 지지로 KBS <가요 톱 텐> 1위까지 올랐던 곡이었고, 서울국제가요제 은상곡 ‘연민’도 이 앨범에 다시 수록하였다. 수록곡 ‘실연’과 ‘이브’, 그리고 ‘그대’는 성인층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었다.
이 앨범 발표 전인 1982년 전영록은 이덕화와 함께 영화 <대학얄개>를 찍은 바 있는데, 그 영화 주제가가 ‘그대가 미워요’였고, 1983년 자신의 신곡 앨범에 이 곡을 수록하여 발표했던 것이었다.
이 당시에는 조용필 팬, 이용 팬, 전영록 팬 등이 나뉘어져 삼각팬덤이 존재했었는데 이들 팬들의 응원 열기도 대단했었던 시기가 바로 이 당시였었다. 전영록은 이 해 연말에 mbc와 KBS의 10대가수 및 가요대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한다.
1984년 발표한 앨범으로 전영록은 또 한번의 음악적 변신을 시도한다. 그동안 포크 발라드와 청장년층을 아우르는 달콤한 감성적인 음악들을 해왔다면, 1984년 11월에 발표한 <85' 전영록 전속기념앨범>에서는 그를 로커로 불리기에 걸맞은 음반을 발표하게 된다.
청춘스타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뮤지션으로서 진지한 고민을 음악에 담기 시작했다. 당시 해외에서 대중적인 록 음악이 유행하는 것을 파악한 그는 스스로 록 스타의 이미지를 덧입기 시작했다. 선배 조용필이 록 음악 중심으로 앨범을 제작한 것도 큰 자극이었다. 그는 데뷔 시절부터 10년 동안 전속했던 지구레코드를 떠나 아세아레코드로 이적하면서 음악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했다. 그는 1980년대 중반 가죽옷과 선글라스 등의 무대 의상을 걸치고 강인한 로커의 이미지를 앞세웠다. 배우로서는 한국식 액션 영화 <돌아이>의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무술 실력까지 뽐내며 터프 가이의 이미지를 강화했다. 그 결과 10대부터 30대까지 폭넓은 인기를 얻는 중견 스타로 발돋움했다.
작곡가 김정택과 손잡고 발표한 이 앨범에서의 타이틀곡 '불티'는 그를 신들린 로커로 변신시킨다. 그의 음악적 이미지 변신을 대중에게 확실히 알리는 데 기여한 이 곡은 여러 음악 차트에서 상위권에 올랐다. 이 곡으로 인해 그의 음악 변신은 대성공하게 되는데, 후속곡인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역시 KBS <가요 톱 텐> 5주간 1위를 하며 그의 로커 이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원래 이 곡은 나미에게 갈뻔한 곡이었다고 한다. 이 앨범으로 인해 1985년에도 양대 방송사 10대가수에 선정됨은 물론이다.
1985년 11월에도 앨범 <전영록 2>를 통하여 록발라드 음악을 이어나간다. 유영선 작곡의 ‘그대 우나봐’와 ‘내 사랑 울보’는 <가요 톱 텐>에서 2주간 1위를 한 곡이고, 이혜민이 만든 ‘오늘 밤에’도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다. 이 앨범의 성공으로 그는 1986년 KBS 가요대상 남자부문 대상을 받게 된다. 사실 그는 1979년부터 7년 동안 KBS 가요대상 후보와 mbc 10대 가수 후보에 빠짐없이 선정되었었지만 대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986년 자신이 제작한 영화 <돌아이2> OST로 ‘돌아이’가 한때 방송에 많이 나온 적도 있었다.
1987년 2월에도 <87 전영록>을 통하여 록음악을 이어나간다. 김정택 작곡의 ‘하얀 밤에’와 자작곡인 ‘이젠 자야 하나 봐’로 인기를 이어나가지만 전작에 비해서는 내리막길이 보이는 느낌이다.
그러나 전영록이 끝나지 않았음은 1988년 1월에 발표한 11번째 앨범 <88 전영록>이 증명해준다.
록블루스를 바탕으로 한 자작곡 '저녁놀'은 1988년 최고의 인기곡으로 자리잡는다. 이 앨범 수록곡으로 대표곡이고, 전영록은 이해 가장 인기있는 가수로 선정되기도 한다. '저녁놀' 후속으로 이건우 작사, 전영록 작곡의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가 연이어 히트했지만 전영록은 방송 출연보다는 공연에 집중했다. 당시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인을 중심으로 콘서트 문화가 붐을 이룬 때였다. 전영록도 이런 분위기에 따라 공연에서 자신의 음악이 인정받기를 원했다.
당시 언론은 1988년 가수왕을 전영록과 최성수, 이선희와 정수라의 4파전으로 예상했다. 후보 가운데 전영록은 가장 주목받았다. 언론에서 ‘포스트 조용필’ 시대의 가수왕으로 거론한 것도 전영록이었다.
1987년 가수왕 제도를 폐지한 이후 다시 부활한 이 제도의 첫 수상자는 누가 될지, 조용필을 잇는 대형 가수는 누구일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높았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달리 1988년 가수왕은 KBS와 MBC 모두 <신사동 그 사람>을 부른 주현미에게 돌아갔다.
비록 전영록의 1988년 가수왕 수상은 좌절됐지만, 그해 주류 음악 무대에서 젊은 층에게 가장 주목받은 것은 전영록과 그의 음악이었다. <88 전영록>은 가수 전영록의 음악 세계가 완성된 결정체이자, 주류 음악이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영향을 받아 성공한 사례로 남았다.
이후에도 그는 1989년 1월 <89 전영록 Rock age>에서 ‘바람에 실려간 사랑’을, 1990년 4월 <90 전영록 신곡앨범>에서 ‘창가에 흐르는 세월’을, 1991년 앨범 <전영록 91>에서 ‘이별은 싫어’를 대중에게 알리지만 전성기는 이미 지나갔음을 확연하게 드러내준다. 당시 국내음악의 주류는 댄스음악으로 재편된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몇 장의 앨범이 더 발표되긴 하지만 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기존 가수들은 신세대 음악인들에 가리어진다.

1980년대엔 남자 가수 중 조용필의 뒤를 이어 이용, 송골매, 김수철, 김범룡 등과 함께 2인자 그룹으로 인기를 누리면서 전영록은 80년대 내내 꾸준히 인기를 모으며 롱런했다. 이 시기 전영록은 '종이학',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등을 히트시키면서 청소년들, 특히 여중고생들에게 우상으로 군림했으니 여러 모로 한국 가요계에 아이돌 원조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중반부터는 '그대 우나봐', '내 사랑 울보', '하얀 밤에', '저녁놀'로 가수로서는 최절정기를 맞았고 특히 86년과 87년 2년 연속으로 'KBS 가요 대상' 대상을 차지했다. 86년까지는 남녀가 나뉘어 있어서 남자 대상, 87년은 통합 대상이다.
연기, 노래, 작곡, 라디오 DJ 등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활약한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다. 가요계와 영화계 둘 다 평정한 몇 안되는 스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80년대 인기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원래 80년대 초반까지 포크 음악을 주류로 선보했던 시절에는 젊은층의 팬층이 크지 않았으나 80년대 중반부터 '불티' 등 락풍의 음악을 선보일 때부터 젊은층의 팬층이 증가하였다.
한편 영화배우이기도 했던 그는 당랑권 유단자로서의 능력을 살려 액션영화 <돌아이> 시리즈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연기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1987년 진유영이 악역으로 나온 영화 <대야망>을 마지막으로 액션영화는 은퇴하고, 영화 몇 편에 더 나온 그는 최진실과 정보석 주연 액션영화 <꼭지딴>(1990) 음악을 맡기도 했다. 30년 가까이 영화 활동을 그만두던 그는 2019년 독립영화 <애월>에서 카메오로 잠깐 나온 바 있다.
한편 전영록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일면도 있었으며 자신의 노래만이 아니라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작사, 작곡해 히트곡을 만들어내면서 한때는 가수보다는 작사/작곡에 더 몰두하면서 역시나 정상에 섰다. 김지애 '얄미운 사람',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김희애의 ‘나를 잊지말아요’, 이은하의 ‘돌이키지 마’ 등이 작곡한 히트곡 중 일부이다. 이지연의 경우 데뷔 2년차에 발표한 2집에 담긴 해당 노래로 가요톱10 골든컵과 MBC 가요대제전에서 10대 가수가 되었으며, 양수경 역시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로 가요톱10 1위와 10대 가수로 올라섰는데 두 곡 모두 1989년 한 해에 발표된 곡이였다. 앞의 둘이 젊은 층에서 인기를 쌓아가다 전영록의 곡을 만나 정상에 오른 것인데 비해서, 김지애의 경우 86년에 발표해서 고만고만하게 히트한 '물레야'만 불러야 했던 트로트 가수로 젊은 층에는 큰 인기가 없었던 지라, 당시 작곡가로 잘 나가던 전영록이 김지애에게 곡을 줬다는 소식에, 과연 전영록이 김지애로 흥행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가요톱10 골든컵과 10대 가수 수상이었으며, 전영록의 곡은 누구라도 히트시켜줄 거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1990년대 들어선 후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변되는 가요계 대격변의 흐름과 세월을 이기지 못해 가수로서도 예전의 인기, 작사/작곡자로서도 흥행을 누리지 못하지만 간간이 콘서트와 뮤지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세월에 역행하는 초동안으로 유명하다. 1990년대에도 소개 멘션이 '만년 소년'이었다.
대단한 영화 마니아로 한때 3만 개가 넘는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수집했다고 한다. 이런 취미를 살려 1990년대 중반 비디오 대여업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비디오 대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어 망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아내였던 이미영과 사이가 나빠져서 이혼한 뒤 한동안 칩거하다가 2000년대 들어 라디오 진행자로 다시 나오고 있다.
연예계에서도 매우 유명한 예술인 집안이다. 부친은 충무로를 대표했던 배우 황해, 모친은 '봄날은 간다'로 유명한 원로가수 백설희였고 남동생인 전진영은 작곡가로 활동했다. 전처는 배우 이미영이었으며 이전 손위처남은 '맹구'로 유명했던 연극배우 겸 개그맨 이창훈. 장녀 전보람은 아이돌 그룹 티아라의 이전 멤버이며, 차녀 전우람은 아이돌 그룹 디유닛으로 데뷔했고 현재는 작곡가로 활동중이다. 이미영과 이혼한 뒤에 재혼을 했고 전유빈, 전효빈이라는 늦둥이 아들 둘이 있다.
1975년 1집 매혹의 새노래 <나그네 길> <애심>
1976년 영화 <내마음의 풍차> OST <그날이 오면> <사랑의 종> <철지난 바닷가>
1976년 영화 <너무너무 좋은거야> OST <너의 마음엔>
1977년 2집 매혹의 새노래모음 VOL.2 <한마음> <잊지 말아요>
1979년 3집 새로운 모습의 전영록 노래모음 <누군가> <꽃밭의 나비>
1979년 전영록 골든디럭스20 <애심> <그날이 오면>
1980년 4집 젊은이의 벗 전영록 신곡모음 <만나려는 마음> <가버린 사랑>
1981년 5집 전영록 <애원> <그대여>
1982년 6집 전영록 <지나간 시절의 연가> <종이학>
1983년 7집 전영록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그대가 미워요>
1984년 8집 '85전영록 전속기념앨범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불티>
1985년 전영록 다운타운27 VOL.1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사랑과 이별>
1985년 전영록 히트곡 모음 <지나간 시절의 연가> <이브>
1985년 9집 전영록 <그대 우나봐> <오늘밤엔> <난 늘 혼자였네>
1986년 영화 <돌아이2> OST <돌아이2> <사랑의 태권>
1987년 10집 '87전영록 <이제 자야하나봐> <하얀밤에>
1988년 11집 '88전영록 <추억> <저녁놀>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
1989년 12집 '89전영록 <아직도 새벽은 오질 않아> <바람에 실려간 사랑>
1989년 전영록 골든 <애심> <바람에 실려간 사랑>
1990년 13집 '90전영록 <창가에 흐르는 세월> <인생>
1990년 전영록&정수라 <우리들의 이야기> <여기 이 불빛이>
1991년 전영록 골든2집 <나그네 길>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1991년 14집 '91전영록 <이별은 싫어> <외출>
1992년 FROM FOLK TO HEAVY METAL <노래는 내인생> <상처>
1992년 전영록 부모님과 함께 <황혼> <저녁놀>
1993년 전영록 20주년 기념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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