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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포크 음악계의 디바 장은아

 

 

장은아는 1978년 데뷔하고 '고귀한 선물',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포크 음악계의 디바로 활약했다. 2015년에 개인전을 열며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백일 지나자마자 가족 모두 서울로 이사했다. 언니와 오빠의 영향을 받아 여고 시절부터 기타를 쳤다. 1976년  여고 졸업후 ‘시모나', ‘맛댕기' 등 CM송을 부르다가 명동의 카페 ‘오라오라’에서 통기타 가수로 데뷔했다.  그러던 중 작사가 박건호가 그녀를 발탁해 1978년 '어떤 옛날에'를 발표,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1956년생인 장은아는 여중생 시절부터 기타를 치며 가수의 꿈을 키웠는데 그도 그럴 것이 언니와 오빠가 가수 장미리. 장재남으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았다. 
가장 먼저 데뷔했던 언니 장미리는 '말 전해다오' '어떻게 할까'를 부른 가수로  TBC의 신인가수상을 받기도 했고 오빠 장재남은 '사람을 찾습니다', '빈의자'를 부르며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삼남매의 음악 스타일은 달랐는데요. 맏이인 장미리(본명-장숙자) 경우는, 고음으로 노래한 ‘아 어떻게 할까', '말 전해다오' 등 컨튜리, 소울, 팝, 락 등 시대를 앞섰던 다양한 장르의 노래로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반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여가수였습니다. 
장재남은 제2의 송창식으로 불릴 만큼 외모, 창법이 송창식과 흡사했는데, 허스키 짙은 고음으로 서민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텁텁한 보컬로 대화식의 노래 ‘빈 의자'와 ‘사람을 찾습니다'를 불러 70년대 말 젊은층의 폭넓은 인기를 모았다. 

남매 중 언니 장미리에 이어 두번째로 정식가수에 입문 한 것은 장은아였다. 을지초등학교 4학년 때 높은 경쟁률을 뚫고 염광 어린이합창단원으로 뽑혔던 재주꾼이었던 장은아는, 학예회와 소풍 때는 단골로 불려나가 노래를 불러야 했을 만큼 학교에서 노래 잘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한양여중에 진학하면서 절친했던 언니 장미리를 따라 방송국에 따라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장은아는 언니 장미리의 노래보다 양희은과 방의경 등의 포크송을 좋아해서 언니와 함께 방의경의 집으로 찾아 갔을 정도라고 한다. 이후 라디오 음악프로를 통해 팝송과 포크송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어린 장은아에게 꿈의 씨앗이 된 언니, 오빠를 보면서 그녀는 1976년 명동카페 '오라오라'의 통기타 가수로 활동했고 유명작사가 박건호의 눈에 띄어 정식 데뷔를 한다. 

여고 졸업후 명동 오라오라에서 노래를 했던 중학교 동창 박효근을 따라 놀러 갔다가 우연히 무대에 올라 통키타를 들고 양희은 노래를 불렀는데, 장은아의 노래에 깜짝 놀란 연예부장이 “노래를 하라”고 제의했고 가수가 될 생각이 없어 거절을 했지만, 집요하게 집에까지 계속 찾아오자 어렵게 결심을 해서 30분 타임을 배정 받아 사람이 없는 초저녁 무대에 올라 주로 외국 팝송과 포크송을 불렀다. 이렇게 우연하게 가수생활을 시작한 장은아는 노래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대학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장은아는 클럽 오라오라 사회자였던 허참의 소개로 1977년 가수 김만수가 진행하는 TBC 라디오 방송 <노래하는 곳에>에 출연했다. 첫 방송 후, 그녀의 맑은 목소리에 매료된 기업에서 CM송 제의가 들어와 시모나, 맛댕기 등의 CM송을 취입했다. 

TBC PD 출신 이수담의 CM송 사무실에 간 장은아는 그곳에서 김정호를 만나, 작사가이자 음반 기획자인 박건호를 소개받았다. 당시 박건호는 콤비를 이뤄 여러 히트곡을 발표했던 박인희와 결별한 상태였다. 박건호는 박인희와 비슷한 음색을 가진 신인가수를 물색하고 있었던 중에 장은아의 맑은 음색에 반해 ‘제2의 박인희’로 키우려고 마음먹었다. 그때 김정호에게서 2곡을 받았지만 비애감이 강한 그의 음악은 맑고 깨끗한 장은아의 음색과 어울리지 않아 음반 취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어떤 옛날에

 

이렇게 박건호에게 발탁되어 장은아는 1978년 2월 데뷔앨범 <어떤 옛날에/잊어버리자>를 발매하여 ‘어떤 옛날에’로 가수로 데뷔했다. 앨범에는 계동균 작곡 박건호 작사의 '어떤 옛날에', 전영 작사 작곡의 '그길로', 오동식 작곡 박건호 작사의 '잊어버리자' 등  장은아가 부른 9곡과 마지막은 김인순이 부른 '이사 가던 날'등 5곡이 실려 있다. 장은아의 데뷔 음반은 킬러곡이 없어 제대로 판매도 하지 못하고 절판되었다.  

장은아는 두 달간 1집 타이틀곡인 계동균의 곡 '어떤 옛날에'와 오동식의 곡 '잊어버리자', 박건호의 곡 '떠나야 해' 등 4곡만을 살리고 추가로 노래를 준비했다. 그녀는 당시 음악인의 아지트였던 서울 신문로 오동식의 한옥 자택에서 연습한 10여 곡 중 8곡을 다시 녹음해 1978년 4월에 공식 1집 앨범을 발매했다. 

1978년 4월 발매한 2집 앨범<고귀한 선물 / 물긷는 여인>에서 포크 명곡 '고귀한 선물'과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귀한 선물'은 장은아 2집 타이틀곡으로 박건호가 작사하고 오동식이 작곡했다. 사랑의 감정이 듬뿍 담긴 이 곡은 장은아의 고운 음색과 사랑을 예찬하는 감미로운 가사가 어우러지면서 깊이 있게 와닿는다.

 

 

고귀한 선물

 

'고귀한 선물'은 앨범 발매 일주일 후부터 각 라디오 방송의 신곡 코너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곧바로 청취자에게서 이 곡이 신청곡이 들어오면서 장은아에게 방송 출연 섭외가 밀려들어왔다. 중앙일보 서병후 기자의 앨범 소개 기사는 이 앨범의 히트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기가 급상승한 장은아는 라디오에 이어 TBC, MBC TV 출연을 시작했다. '고귀한 선물'은 당시 MBC TV <금주의 인기가요」에서 6개월이 넘도록 차트 톱10을 유지하며 장은아의 이름을 처음 대중에게 알렸다. 

장은아의 첫 히트곡 '고귀한 선물'은 이후 정수라, 소리새, 한울타리, 이정희, 바다새 등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이 곡은 장은아 자신에게는 물론, 7080음악을 대표하는 노래 중의 하나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이외에도 장은아가 데뷔 시절 작사 작곡한 '걱정은 이것 하나'는 독특한데 어린아이가 전화를 받으면서 노래를 불러주는 상황을 연출한 실험적인 곡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인기가 많았던 로보(ROBO)의 히트 팝송 'stoney'를 번안한 '무뚝뚝한 사나이'와 '브라더 선 &시스터 문'을 번안한 '햇님 달님' 등도 추가했다. 전반적으로 밝고 리드미컬한 수록곡은 맑은 중음역대의 장은아의 음색과 잘 어울렸다.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1978년 8월 지구레코드에서 발매한 정규 3집 음반<이 거리를 생각하세요 /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타이틀곡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는 포크송으로는 이례적으로 지상파 라디오 차트 정상과 TV 가요차트 2위에 오르며 크게 히트했다. 
총 11곡(건전가요 제외)을 수록한 이 앨범은 1집 참여 작곡가인 오동식, 박건호 외에도 최주호, 신병하, 김영광 등이 가세해 총 5명이 참여했다. 전작의 히트곡 '고귀한 선물'을 작곡한 오동식의 타이틀곡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가 연이어 크게 히트했다. 

이 노래는 박건호가 겨울 명동 거리를 연상하며 쓴 가사를 중심에 두고 연말의 기분 좋은 캐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경쾌한 분위기로 편곡해 히트했다. 이 노래는 각 방송의 교통 관련 프로그램 주제가로 무수하게 사용됐고, 특히 운전기사와 새벽 거리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색적인 노래로 소개되기도 했다. 

음반 발매 이후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는 라디오 각종 인기가요 집계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MBC TV <금주의 인기가요>와 TBC 등 각종 방송과 언론의 인기가요 차트에서 2위까지 오르는 큰 히트를 기록했다. 포크송으로는 이례적인 큰 성과였다. 

장은아는 1979년 MBC 방송가요대상 신인여가수 후보로 선정되었다. 당시 경쟁자는 심수봉, 정윤선, 현숙, 박은옥이었다. 그녀가 수상에 실패한 것은 이 앨범이 발매된 1978년 제2회 대학가요제에 혜성같이 등장한 여대생 트로트 가수 심수봉 때문이었다. 당시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킨 심수봉은 장은아와 같은 지구레코드 소속 가수가 되면서 회사의 지원을 받아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며 TBC 신인여가수상을 수상했다. 

전작에 이미 수록한 '생각하며 걸었네', '잊어버리자' 등 무려 4곡을 이 앨범에 다시 실은 이유는 서둘러 3집을 제작한 탓에 곡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는 장은아 3집에서도 나타나는 반복적인 구성으로, 지극히 대중성을 염두에 둔 앨범 제작이었다. 

이 음반은 1979년까지 추가 제작했을 만큼 상업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뒀지만, 단기간에 급조한 앨범은 음악적 완성도를 저해했다. 이는 주는 곡을 받아 노래만 할 수밖에 없었던 신인 가수 장은아에게 음악적 갈등을 안겨줬다. 장은아는 이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당시는 선곡이나 앨범 구성에 대해 의견을 내놓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제작자 박건호와 결별한 후 발매한 장은아 6집은 가수가 앨범의 음악을 스스로 통제하는 자주 제작의 의미를 전해준 앨범이다. 히트곡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는 남궁옥분, 하남석, 둘다섯의 이두진, 박장순, 연리지 등 많은 포크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결혼의 꿈

 

1980년 5월 4집 <결혼의 꿈>을 발매했으며 타이틀곡 '결혼의 꿈'이 히트했다.

1981년 2월 서라벌 레코드로 옮겨 5집 앨범<작은 나비/ 내 마음이 흐를때>를 발매했다. 
박건호와의 결별 후 서라벌레코드로 전속사를 옮긴 장은아는 신인 작곡가 이범희의 신곡 '작은 나비' 등 올리비아 뉴튼 존을 연상시키는 경쾌한 디스코풍 노래를 취입했다. 당시는 디스코 열기로 인해 포크와 록 음악의 힘이 많이 빠졌던 시절이었다. 장은아의 신곡 ‘작은 나비’는 대중적으로 튀어 보기 위한 음악적 외도였다. 이범희는 이 노래가 히트하자 MBC국제가요제에 출전하려 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른 장은아가 춤을 잘 추지 못해 출전을 포기했다.  
이때 ‘서울’이란 노래를 장은아, 장재남 남매가 듀엣으로 취입했다. 두 사람은 언론의 관심을 의식해 듀엣 음반을 염두에 두었지만 음악적 색깔이 달라 성사되지는 못했다.  

 

 

작은 나비

 

1981년 12월, 장은아는 라디오를 진행할 때 만난 KBS 라디오 PD 와 결혼하며 공백기를 맞았다.

1982년 발매한 6집 앨범 <오늘밤 내게 / 그림자따라>은 ‘제2의 박인희’라는 이미지를 바꾸고자 했던 장은아의 시도가 두드러진 앨범이다. 조동진과 김현식이 프로듀싱한 이 앨범은 비록 히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가수가 자신의 색깔에 맞는 음악을 선택함으로써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다는 데 의미가 있는 앨범이다. 

1978년 한 해에만 3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스타덤에 오른 장은아는 인기 경쟁이 치열한 가요계 풍토에 회의를 느꼈다. 대중가요보다는 인기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포크송을 부르고 싶었지만, 제작자 박건호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박건호와 음악적 갈등을 빚은 장은아는 4집을 발매한 후 그와 결별했다. 1981년 KBS 2FM <젊은이의 노래>에서 임백천과 함께 8개월간 공동 DJ를 맡았던 장은아는 서라벌레코드로 전속사를 옮겼다. 

결혼 후 10개월의 공백기를 끝낸 장은아는 1982년 ‘제2의 박인희’ 콘셉트로 굳어진 이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때 '행복한 사람'을 불러 인기를 얻으면서 언더그라운드 가수 열풍을 몰고 온 조동진의 노래를 라디오에서 듣고, 용기 내어 찾아가 곡을 부탁했다.  

조동진은 “목소리는 마음에 드는데 내 노래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우려했지만, 결국 '오늘밤 내게' 등 5곡을 장은아에게 줬다. 장은아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 조동진 선배는 자신의 음악 스타일을 저에게 맞춰주기 위해 음악적 조언을 많이 해 줬어요”라고 회고했다. 조동진은 장은아에게 준 곡 중에서 3곡을 골라 직접 디렉팅했다. 

당시 방송에서 장은아와 친분을 맺은 김현식도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았고 '너를 기다리며', '사랑이 찾아오면'등 신곡 2곡을 줬다. 당시 CM송 사무실을 운영하던 최성원은 김현식의 주선으로 '축하합니다', '사랑일 뿐이야' 2곡을 장은아에게 줬다. '사랑일 뿐이야'는 들국화 시절 널리 알려진 곡이지만 실은 장은아가 오리지널 가수인 셈이다. 6집 녹음은 장충동 녹음실에서 진행했다. 

 

 

오늘밤 내게

 

이 음반은 1982년 서라벌레코드에서 발매한 장은아의 통산 여섯 번째 정규 앨범이다. 음반에 표기한 2집이란 ‘서라벌레코드에서 발매한 두 번째 음반’을 뜻한다. 분위기 있는 흑백 커버 사진은 지구레코드 시절 커버 사진을 촬영했던 허슬러가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찍었다. 

총 12곡의 수록곡 중 1면 마지막 트랙인 박경애의 '햇빛 내린다'는 건전가요였다. 방송가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조동진의 곡 '오늘밤 내게'의 히트를 예상했다. 그러나 음반 발매 두 달 후, 장은아는 연예인 활동을 반대하는 시댁 탓에 활동을 중단하고 말았다. 
'오늘밤 내게'는 장은아가 활동을 중단한 기간에도 라디오에서 꾸준히 흘러 나왔다. 장은아는 한 인터뷰에서 “지금도 공연장에서 '오늘밤 내게'를 신청하는 관객들이 많아 깜짝 놀란다”며 활동을 이어가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히트 직전에 묻힌 '오늘밤 내게'는 1987년 조동진이 자신의 앨범에 다시 수록했고, 워너뮤직코리아에서 발매한 장은아의 베스트 앨범 CD에 재수록했다. 장은아 6집은 히트한 앨범은 아니지만, 가수가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색깔에 맞는 음악을 선택해 제작함으로써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 앨범이다. 

장은숙은 1983년 이후 몇 차례 신곡을 발표했지만 개인적인 일들로 제대로 활동할 수 없었다. 이후 대중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그녀는 1990년 신보를 발표하며 조용히 돌아왔다. 장은아는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정체성 없이’ 음악을 시작했어요. 그냥 대중적인 가수가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고 인기도 얻었고 그걸로 만족했어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니 내 속의 진짜 알맹이를 꺼내서 뭘 보여주고 싶어도 쉽지 않더군요. 진짜 이제는 인기와 돈에 상관없이 허심탄회하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노래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1990년 발표한 음반은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 첫 시도였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1990년 6월 반도음반에서 발매한 장은아의 컴백 앨범 <험한 세상 태어나 생명처럼 간직한 나의 당신이기에…>은, 통산 8번째 음반이다. 수록곡 총 10곡은 조덕배, 이혜민, 김지환, 임기훈, 정경천, 안진우, 조진원 등 무려 7명의 작곡가들이 참여한 노래로 구성했다. 
조덕배가 곡을 만들고 그녀의 남편이 가사를 쓴 타이틀곡 '내 작은 고운 님'은 남편 이름대신 큰아이 이름 김현영으로 작사자를 표기했다. '덧없는 마음' 등 대부분의 수록곡들은 이전보다 내면의 깊이를 추구한 아름다운 가사와 근사한 멜로디를 들려준다. 

 

 

내 작은 고운님

 

앨범에서 장은아는 트레이드마크인 밝고 리드미컬하며 경쾌한 노래에 여전한 강점을 보인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삶의 애환과 슬픔을 적절하게 녹여내는 성숙한 창법을 구사했다. 장은아는 지금도 타이틀곡 '내 작은 고운님'에 대해 자신의 히트곡보다 더욱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이 앨범은 데뷔 시절의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음악적으로 한층 발전하고 성숙한 면이 느껴진다. 널리 알려진 그녀의 히트곡보다, 이 앨범에 수록한 숨은 노래 중에서 예쁜 가사와 긴 여운을 남기는 좋은 곡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후 장은아는 1993년 기획사 화인픽스를 창립해 음반 제작자로 변신했다. 라이너스 보컬로 블랙테트라의 히트곡 '구름과 나'를 작곡한 고상록의 독집, 록 밴드 점프 등의 몇몇 음반을 제작했으나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이후 활동을 접고 자녀 교육에만 전념했던 그녀는 1998년, 막 불기 시작한 포크 부활 바람을 타고 활동을 재개해 지금까지 노래하고 있다. 이 앨범은 그녀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대중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진 못하지만, 가장 음악적 완성도가 높고 진정성 넘치는 음반으로 평가받았다. 

1990년대 경기도 미사리가 포크가수들의 요람이던 시절 장은아는 이치현 등과 함께 미사리 카페촌의 인기 가수였다. 2007년에 제10집 앨범을 냈을 정도로 그녀는 한시도 노래를 쉬어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그녀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춤을 추어요’의 댄스가수 장은숙과 헷갈리기도 한다. 이름과 음색이 비슷한 데가 있어서 빚어진 결과다.  

 

 

잠시 지나간 바람일 뿐

 

2007년 10집 앨범 <그건 잠시 지나간 바람일 뿐>을 17년만에 발매했다. 앨범 타이틀은 ‘그건 잠시 지나간 바람일 뿐’으로 한동안 공백기를 거친 후 걸어온 오랜 추억 위주의 활동의 끝을 알리는 음반이다. 더욱이 국내 대중음악계에선 보기 드물게 여가수 자신이 직접 프로듀싱한 음반이라 더욱 뜻 깊다. 통기타 스타일에 재즈와 모던 록을 접목한 독특한 퓨전스타일로 음악적 변신을 시도하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총 10곡이 수록된 이번 음반엔 ‘축복’, ‘잠시 지나간 바람일 뿐’, ‘사랑 후’, ‘자유인’ 등 4곡의 신곡과 더불어 자신의 히트곡 중 5곡, 그리고 김창기의 ‘거리에서’를 새롭게 리메이크했다. 

이번 앨범작업에서는 록그룹 라일밴드의 박경원이 작곡, 편곡을 맡았다. 그결과 가볍고 경쾌한 젊은 감성과 7080분위기가 적당히 믹스된 독특한 맛의 노래들이 만들어졌다. 첫곡 ‘축복’은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를 작곡한 홍성수의 곡으로 깔끔하고 경쾌한 멜로디와 가사로 구성되었으며 ‘잠시 지나간 바람일 뿐’은 장은아가 직접 작사한 곡으로 가요계 데뷔전인 20대초반 노래한다고 명동 다닐 때,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등의 옛 추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자서전 형식의 코끝이 찡해지는 곡이다. ‘덧없는 마음’은 최고의 기타리스트 김광석의 기타반주가 목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진 편안한 분위기의 트로트 포크다. ‘자유인’은 시인이자 작사가인 박건호씨의 시에 김성봉이 곡을 붙였다. 

 

 

덧없는 마음

 

리메이크곡도 변화가 있다. 그녀의 대표곡인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와 ‘고귀한 선물’은 원래 1절밖에 없는 노래들이었는데 작사가인 박건호씨가 거의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2절을 각각 붙여줘 인생의 깊은 느낌을 주는 곡들로 새롭게 다가왔다. 90년에 발표한 조덕배 곡 ‘내 작은 고운 님’은 첼로를 사용해 더욱 애잔하고 풍성한 사운드로 다시 태어났다. 김창기의 ‘거리에서’는 장은아의 애창곡으로 그녀의 풍부한 감성과 맑고 깊이 있는 목소리가 노래의 맛을 제대로 표현해 주고 있다. 

장은숙은 2013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혼자 그림을 그렸지요.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 나의 음악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야외공연을 할 때의 느낌 같은 것을 그림으로 나타냈습니다.” 
지난 2015년 화가로서 인사동 갤러리 루벤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는 경기도 광주의 그림 갤러리와 음악실에 작은무대까지 딸린 집에서 행복하게 살고있다고 한다. 


1978  2월 <어떤 옛날에/잊어버리자 / 잊어버리자> (매혹의 새노래) 
1978  4월 <고귀한 선물 / 물긷는 여인>
1978  8월 <이거리를 생각하세요 / 사랑이 지나간 자리>
1980 <결혼의 꿈>
1981 <작은 나비 / 내 마음이 흐를때>
1982 <오늘밤 내게 / 그림자따라>
1983 <꿈꾸는 인형>
1987 <내 작은 고운님>
1990 <험한 세상 태어나 생명처럼 간직한 나의 당신이기에…>
2007 <그건 잠시 지나간 바람일 뿐>
2022 <행복한오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