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vol.2
당시 해외에서도 큰인기를 얻고 있던 레게가 국내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시작했으며 김건모 '핑계'의 메가히트로 레게풍의 댄스 음악으로 가요계를 강타하였으며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 투투의 '일과 이분의일', 임종환의 '그냥 걸었어', 마로니에의 '칵테일사랑'등의 레게음악이 큰 인기를 얻었다.
솔로 남자 가수들의 인기도 대단했는데 김건모 이외에도 김현철의 '달의 몰락', 조관우의 '늪', 김민교의 '마지막 승부' 등이 크게 히트했으며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도 큰 인기를 끌었다. 박진영이 '날 떠나지마', 서지원이 '또 다른 시작'을 발표하며 데뷔했으며 3인조 힙합댄스 그룹 DJ DOC 역시 '머피의 법칙'으로 큰 히트를 기록하며 가요계에 등장했다. 또한 R&B 열풍을 이끈 솔리드와 포크록 밴드 녹색지대 역시 각각 '이 밤의 끝을 잡고'와 '사랑을 할꺼야'로 인기를 끌었다.
김현정, 엄정화, 김완선,잼 등이 댄스 음악을 주도했고. 이외에도 록 음악에서는 김경호, 김종서, 넥스트, 봄 여름 가을 겨울 등이 최고의 전성기 이끌었다.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과 H.O.T., 젝스키스, 지오디, S.E.S, 핑클 등 점차 아이돌 그룹화 되어가는 거센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음악은 점차 다양성을 상실한 채 10대 취향의 음악으로 급격히 옮겨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1990년대의 대세는 댄스음악이었다.
김건모는 1990년대 이후로 범국민적 인기를 끌어 '국민가수'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였다. 김건모의 등장이후로 본격적인 한국 가요계 1990년대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독특한 음색과 음악적 역량으로 시대를 뛰어넘는 명곡들을 다수 발표하였으며, 여러 가지 장르를 시도하고 유행시켰다. 대한민국 최단 기간 최다 음반 판매량 기네스 기록 소유자에 골든디스크 최초 3회 연속 대상 수상자이기도 하며, 1994년 지상파 3사 연말 가요제와 서울가요대상, 골든디스크 시상식까지 5대 가요 시상식에서 모두 대상을 수상했다.
1992년 10월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를 타이틀로 1집 앨범을 발표한다. 독특한 음색으로 큰 인기를 얻었으며 후속곡 '첫인상' 이 1993년 11월 가요톱텐 5주 1위 골든컵을 수상하였다. 1993년 12월 2집 앨범을 발표했으며 레게 리듬을 도입한 하우스 댄스곡 '핑계'가 대박을 치면서 이 곡 하나로 단숨에 '국민가수'로 위상이 급상승했다. 이후 1994년을 '레게 열풍의 가요계'로 만들만큼 대중음악사에 미친 영향력이 어마어마했다. '핑계'로 골든컵을 또 다시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후속곡 '혼자만의 사랑'으로 김건모표 발라드를 세상에 널리 알리면서 애절한 발라드도 잘 소화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앨범으로 180만장을 기록하면서 1994년 음반판매량 전체 1위를 차지했으며 방송 3사 가요대상,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에서 모두 대상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1995년 2월 발매된 3집의 타이틀곡 '잘못된 만남' 은 강렬한 유로비트의 하우스 장르의 곡으로, 이후 1990년대 말까지 전국에 하우스 열풍을 일으키는 시발점이 된 곡이었다. 이 곡 역시 KBS 가요톱텐 5주 1위 골든컵, SBS TV가요20 6주 1위,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 2주 1위라는 기록을 달성했고 KBS에서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 외에 '너에게', '드라마', '넌 친구? 난 연인!', '아름다운 이별' 등의 앨범 수록곡들까지 많은 인기를 끌게 되면서 1990년대 초중반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한국 가요계를 휩쓸었다. 3집 앨범은 286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되었다.
자신의 손으로 프로듀싱하여 1996년 발매한 4집 <Exchange kg. m4>는 최준영, 솔리드의 정재윤 등과 작업을 했다. 4집은 발매되자마자 타이틀곡 '스피드'를 비롯해서 수록곡들 '미련', '악몽', '빨간우산'까지 차트에 이름을 올리며 크게 사랑받았다. '스피드'는 음악방송 14회 1위를 기록해 당시 최고인기가요로 우뚝 섰고, 동명의 MBC 프로그램 오프닝 삽입곡으로 유명한 '테마게임'을 히트시키면서 181만 장의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각종 가요 시상식에서 최초로 3년 연속 대상을 수상하면서 핑계-잘못된 만남-스피드라는 최절정 전성기의 마무리를 지었다.
1997년 12월 발매된 5집 <Myself>에서는이전보다 한층 진보한 재즈와 소울을 기반으로 한 흑인 음악의 색깔이 더욱 짙어지며 평단의 호평을 이끌었다. 특히 타이틀곡 '사랑이 떠나가네'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가 매우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타이틀곡인 '사랑이 떠나가네'는 '애수가 서린 성인 취향의 타이틀곡이었다 수록곡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각종 가요차트 1위를 쓸어담고 110만장을 판매하면서 여전히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으나, 2년 후인 1999년 11월 발매된 6집 <Growing>은 뛰어난 작품성과는 달리 49만 장에 불과한 저조한 판매량과 미비한 홍보로 대중적으로는 처절하게 묻혔고 가요 차트에선 10~20위 권 정도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이 앨범은 그의 뮤지션으로서의 전성기였다.
룰라는 1994년 <Roots Of Reggae>로 데뷔했으며 '백일째 만남'과 '비밀은 없어'라는 곡으로 활동, 큰 인기를 끌었다. 1995년 발매된 두 번째 앨범 <날개 잃은 천사>는 100만장이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타이틀곡 '날개 잃은 천사'는 1990년대 초중반 국내에서 유행한 레게풍 댄스 팝의 열풍을 타고 대중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그 해 연말에 발표한 정규 3집 앨범의 타이틀곡 '천상유애'가 표절시비에 휘말리며 한순간에 이미지가 추락, 침체기를 맞았다. 이후 1996년 6월 발표한 정규 4집 <All System Go>를 발표했고 '3!4!'가 큰 인기를 끌며 명성을 회복하였다. 하지만 정규 4집 활동 마감 후 멤버 김지현이 탈퇴하였으며, 룰라는 흑인 가수 마이키 로메오를 객원 래퍼로 맞이하며 1997년 1월 정규 5집 <The Final>을 발표, 다시 한번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룰라는 각종 구설수로 인해 해체를 공식 선언하면서 <The Final>을 녹음했다. 리더 이상민이 처음으로 프로듀싱한 앨범이었고 수록곡 중 '연인'이 히트했지만 룰라는 예고대로 해체했다.
199년 2월 재결성하여 정규 6집 <Six N Six>를 발표했다. 가요계에는 룰라의 컴백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룰라는 라틴 리듬의 댄스곡 "기도"를 각종 차트 1위에 올리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2000년 6월에는 정규 7집 <풍변기곡(風變旗曲)>을 발표하며 국악 느낌을 물씬 살린 새로운 음악과 의상으로 화제를 뿌리며 활동했다. 하지만 다시 멤버들은 다시 개별 활동에 들어갔고, 2001년 7월 룰라는 고영욱의 입대와 함께 발표한 정규 8집 <Best & Last>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https://youtu.be/zyAgEyG8m0Q?list=RDzyAgEyG8m0Q
투투(TWO TWO)는 김지훈, 오지훈, 유현재와 객원 멤버 황혜영으로 구성되었으며, 투투라는 그룹의 이름은 데뷔 당시 '나이가 22살인 동갑내기들'이라는 의미다.
데뷔곡 '일과 이분의 일'은 1994년 4월 앨범 출시 후 KBS 가요톱10의 6월 첫째 주에 28위로 첫 진입을 하여 넷째 주 18위, 다섯째 주에는 8위에 올랐고, 7월 둘째 주에는 4위, 7월 셋째 주에는 2위로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 여세를 몰아 SBS 생방송 TV 가요 20에서는 5번 1위를 달성했고, KBS 2TV 가요톱10에서는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에 이어서 바로 골든컵의 주인공이 되었다. 발라드인 후속곡 '그대 눈물까지도' 역시 가요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투투는 성공적인 신인으로 정착했다. 1995년 2집을 발매하고 타이틀곡 '바람난 여자'는 챠트 5위에 오르며 사랑을 받았고 후속곡 '니가 내 것이 되갈수록' 역시 사랑을 받았다. 1996년 1월 리더 김지훈의 군 입대 및 계약 종료를 이유로 해체했다.
DJ DOC는 1994년 9월에 1집을 내고 데뷔곡인 '슈퍼맨의 비애'가 지상파 가요 순위프로에서 10위 권에 랭크됐다. 특히 SBS <생방송 TV가요 20>에서는 데뷔 첫 1위 및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였고, 신문에 기사가 날 정도로 반응이 괜찮았다. 이하늘, 김창열과 같은 클럽DJ 출신인 정재용이 새 멤버로 중간 투입되어 1995년 5월에 정규 2집을 발매했고, 타이틀 곡인 '머피의 법칙'을 선보인 이래 1위를 여러 번 차지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96년 3집 앨범을 통해 '겨울 이야기', '미녀와 야수'를, 3.5집 여름 스페셜 앨범을 통해 '여름 이야기' 등의 1위 곡들을 배출해 내면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정규 3집의 판매량은 무려 195만장을 판매하여 DJ DOC의 유일한 밀리언셀러 음반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1997년 4집의 타이틀곡인 'DOC와 춤을...' 으로 엄청난 히트를 쳐서 1세대 아이돌로 바뀌는 시대였음에도 가요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차지했다.
4집은 비록 과도기에 있던 앨범이라 기존의 해학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있지만 타이틀곡인 'DOC와 춤을', '뱃놀이', '삐걱삐걱', '모르겠어?', 'Everybody' 등의 트랙에서 사회 및 가요계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다. 3년만인 2000년에 셋이 다시 뭉쳐 5집 <The Life... Doc Blues 5%>로 컴백, 'Run to You'로 인기 몰이에 성공했다. 5집은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김창열의 비중이 극히 적었고 이하늘과 정재용의 랩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극히 힙합스러운 앨범이다. 특히 'L.I.E'나 '포조리'등의 직설적인 욕설이 들어간 곡들을 통해 공권력 및 찌라시 기자들에 대한 강도 높은 메시지를 설파했다. 욕설 때문에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청소년 유해매체'로 판정받아 19금 딱지가 붙여졌다. 2004년에는 6집 ''Sex And Love..Happiness' 을 발표했다. 타이틀 곡은 <I Wanna>였고 싸이가 작곡 및 피쳐링에 참여한 <수사반장>을 후속곡으로 활동했다. 이 중 김도향의 곡을 리메이크한 '바보처럼 살았군요' 는 원곡자인 김도향이 직접 피쳐링에 참여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후 2010년 컴백하기까지 개별활동으로 이어갔다.
김현정은 시원한 가창력과 독보적인 샤우팅 창법으로 한국 가요계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레전드 디바다. 모든 세대에게 사랑을 받은 그녀는 전성기 시절 1세대 아이돌 그룹들과 경쟁하여 우위를 점한 유일무이한 여자솔로가수로 평가 받는다. 존 댄스 가수들과 달리 록을 기반으로 한 록 댄스곡으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까지 여성 솔로가수 중 가장 많은 음반 판매량과 음악프로 1위곡을 탄생시켰다. 1998년 발매한 1집 수록곡 '그녀와의 이별'과 1999년 발매한 2집 수록곡 '되돌아온 이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면 2000년 발매한 3집 수록곡 '멍'에서 "다 돌려놔" 라는 가사와 춤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전국민이 돌렸다고 할 정도로 노래와 춤이 엄청난 인기를 얻어 그 해 여성 솔로 가수 중 유일하게 지상파 3사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상을 모두 수상했다. 후속곡 <너 정말>까지 정상에 올려놓는데 이어 발라드 곡인 <거짓말처럼>으로도 인기몰이를 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4집에서 '떠난 너', 5집에서 '단칼', 6집에서 '끝이라면' 등 히트곡을 줄줄이 쏟아냈다.
엄정화는 1993년에 발매한 1집 <Sorrowful Secret>에서 신해철이 작곡한 ‘눈동자’를 타이틀곡으로 방송활동을 하였다. 1996년에 발매한 2집 <Uhm Jung Hwa 2>에서는 타이틀곡이었던 '슬픈 기대'가 다채로운 색상의 가발을 쓴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으면서 차트 10위 권에 올랐다. 1997년에 발매한 3집 <후애> 에서 주영훈이 작사/곡 한 타이틀곡 '배반의 장미'가 데뷔 이후 최초로 여러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인기 여가수의 반열에 오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3집 활동 막바지 때 대 신인이었던 지누션의 데뷔앨범 후속곡인 '말해줘'의 피쳐링을 맡았는데 당시 신인이었던 지누션은 이 곡으로 가요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1위를 차지하면서 큰인기를 얻었다. 엄정화 역시 사실상 후속곡 수준으로 활동하면서 인기를 이어갔으다. 3집의 대성공 이후 주영훈과 다시 한번 손잡고 1998년에 출시한 4집 <Invitation>의 타이틀곡 '포이즌'은 보다 세련된 스타일로 다듬어진 멜로디와 편곡 덕분에 국민적 사랑을 받았으며, 당시 스트레이트 단발머리를 선보이며 패셔니스트답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4집 후속곡인 '초대'는 파격적인 노출 수준의 뮤직비디오 부채를 활용한 섹시 안무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99년 발매된 5집 <005.1999.06>의 타이틀곡 '몰라'는 당시 테크노 트렌드에 발 맞추어 귀마개에 물이 들어가 있는 일명 물병 헤드폰을 쓰고 나오면서 패션 아이템으로 까지 승화시키는 등 대 히트를 기록했다. 주영훈이 만든 후속곡 'Festival'은 밝고 경쾌한 컨셉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했으며 활동시기가 한창 여름일 때라서 피서 시즌과 맞물려서 길거리마다 이 노래가 나왔을 정도로 타이틀곡 못지않게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2000년 6집 <Queen of Charisma>은 'Queen of Charisma'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웠으며 전형적인 주영훈 스타일의 댄스곡들로 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전작들이 얻었던 광범위한 지지를 시장에서 이끌어내는 것에는 실패했으며, 일렉트로니카 풍의 댄스곡 '틈'으로 음악적인 시도를 했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이듬해인 2001년에 발매한 7집 <화(花)>의 타이틀곡 '다가라'는 전작보다 더 대중적이었으며 중독성이 강해 SBS 인기가요 차트에서 한달 가까이 1위 후보에 올랐다. 후속곡인 '괜찮아요' 역시 중위권까지 오르면서 선전했다.
박진영은 1994년 내놓은 데뷔앨범 <Blue City>를 통해 타이틀곡 '날 떠나지마'로 데뷔하여 파격적 패션과 안무, 그리고 청춘 드라마 「느낌」에 삽입되었던 후속곡 '너의 뒤에서'의 동반 인기로 처음으로 대중적 인기를 획득했다. 1995년 발표한 2집에서 '청혼가'와 '엘리베이터'가 히트했다. '청혼가'는 여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프로포즈와 결혼식 축가로 자주 사용되었으며 '엘리베이터'는 파격적인 춤과 가사로 청소년 유해 논란을 일으키며 이슈로 떠올랐다. 1997년 발표한 3집에서는 디스코 리듬을 이용한 '그녀는 예뻤다'가 크게 히트했으며 1997년 발표한 정규 4집에서는 펑키와 블루스를 접목한 'HONEY'가 히트했다.

한국대중가요의 주류 경향은 단번에 댄스뮤직으로 바뀌었고, 발라드는 크게 위축되었다. 신세대였던 70년대 생들이 「X세대」로 불리며 문화소비의 중심이 되면서, 집단주의가 무뎌지고 ‘개인’과 ‘개성’이 등장했다. 「X세대」는 파격적인 패션을 선보였고, 압구정, 강남역 일대 등 젊음의 거리들을 탄생시켰다. 풍요로운 시대적 상황과 개성넘치는 패션,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이 융합된 문화들로 꽉채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서태지와아이들로 대표되는 댄스뮤직은, 이 「X세대」 문화를 대표하는 음악이었고 그 뒤를 '나를 돌아봐'의 듀스, '날개 잃은 천사'의 룰라, '이유 같지 않은 이유'의 박미경, '핑계'의 김건모 등이 이었다.
듀스가 데뷔곡 '나를 돌아봐'를 들고 나왔고 댄스음악의 전성기를 이어갔다. 또한 지난 해 데뷔했던 서태지와 아이들과 김건모가 본격적으로 가요계를 양분하기 시작하며 댄스음악의 전성기를 열었다. 95년 7월 고별콘서트를 끝으로 해체하고 두 멤버는 미국으로 떠났다. 이 중 멤버 김성재가 솔로 1집 <말하자면>을 발표하고 한국으로 귀국해 11월 19일 컴백무대를 가졌으나, 다음 날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이 터지기도 했다.
박미경은 1985년 제6회 <강변가요제>에서 '민들레 홀씨 되어'로 장려상을 받으며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1986년 드라마 <풀잎마다 이슬>의 주제가를 부르는 등 음악 활동을 계속하다 1988년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의 타이틀의 앨범을 발표한다. 1994년 프로듀서 김창환에게 발탁되어 정규 첫 앨범 <박미경>으로 가요계에 공식 데뷔한다. 타이틀곡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시원한 가창력을 선보여 KBS <가요톱10>에서 4주 연속 1위를 하는 등 큰 히트를 쳤으며, 이어 1995년 발표한 2집 <Jungle New Style>의 타이틀곡인 '이브의 경고'가 가요 프로그램에서 5주 연속 1위를 하는 등 대 히트하면서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여자댄스 가수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이브의 경고'의 안무인 손바닥 뒤집기 댄스는 그 당시 남녀노소 누구나 한번쯤은 따라 했던 굉장히 유명했던 안무였다. 뒤이어 발표한 후소곡 '넌 그렇게 살지마',4집 타이틀곡 '집착', 5집 타이틀곡 '벌' 등이 잇따라 히트하였다.
힙합을 앞세운 현진영과 새로운 테크노 사운드로 중무장한 노이즈 등의 출현과 S.E.S에서 핑클로 이어지는 걸 그룹의 태동과 H.O.T., 젝스키스, 신화, 샵 등으로 점차 아이돌 그룹화되어 가는 거센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보이그룹은 H.O.T.와 젝스키스의 양강구도가 완전히 정착되었고 걸그룹의 경우 S.E.S.와 98년 4월 데뷔한 핑클의 양강구도가 형성됐다. 베이비복스 역시 2집 타이틀 곡 <야야야>로 조금씩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이들의 노래는 대부분 사랑노래이긴 했지만, 구세대의 고정관념의 타파와 자기해방의 선언을 포함하고 있었고, 따라서 가사와 형식에서 모두 파격적이었다. 이러한 댄스뮤직의 승승장구는 발라드가 신승훈을 중심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간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https://youtu.be/6wMUCMGFXPo?list=RD6wMUCMGFXPo
현진영은 1990년 "현진영과 와와"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1집 <New Dance>에서 국내에 바비 브라운 스타일의 힙합을 기반으로한 뉴 잭 스윙 음악을 소개했다. 1집의 타이틀곡 '야한 여자'는 당시로서는 노골적인 가사와 힙합이라는 낯선 장르로 인해 여러모로 반향을 일으켰지만, 음악보다 춤이 더 인기를 얻었다. 후속곡 '슬픈 마네킹'이 음악과 춤 양쪽 모두 큰 인기를 얻으며 주목받았다. 1992년 제2집 <New Dance 2>를 발표했으며 타이틀 곡인 '흐린 기억속의 그대' 는 높은 완성도로 KBS 가요톱텐에서 5주 1위, MBC 음악방송에서 6주연속 1위를 SBS 음악방송을 6주 연속 1위를 하는 등 굉장한 인기를 얻었다. 이곡은 오늘날에도 현진영의 대표적인 노래로 남아있고, 같은 앨범의 '너는 왜(현진영 GO 진영 GO)’ 역시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인기를 이어갔다. 뉴 잭 스윙의 1세대면서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와 함께 현재 K-POP으로 일컫는 아이돌 위주의 댄스 음악을 개척한 선구자들 중 한 명이기도 하다.
1993년에 3집 <Int: World Beat And Hiphop Of New Dance 3>를 발표하여 '두근두근 쿵쿵'이란 곡으로 인기를 이어갈 듯 했으나, 발매 직후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되고 이때부터 방송 금지되어 긴 시간동안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1991년 이미 대마초 흡입 혐의로 처벌을 받은 바 있었으며 이후에 1994년에도 필로폰 혐의로 다시 체포되었다. 이후 현진영은 사실상 나락으로 떨어졌고, 1995년에 SM과의 계약이 종료되었다.
듀스는 고교 동창[인 김성재, 이현도로 이루어진 힙합 그룹으로, 둘 다 '현진영과 와와'의 와와 출신이다. 1993년 발매된 듀스의 데뷔 앨범 <Deux>는 이현도가 전곡 작사/작곡하고 프로듀싱까지 담당했다. 힙합의 초기 단계이지만 완숙미가 돋보이며 뉴잭스윙 스타일의 힙합을 구사한 타이틀 곡 '나를 돌아봐'가 상당한 인기를 끌며 신인으로서 성공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세상속에서...... 그댄'은 몇 달 후 개최되었던 환경콘서트 ''93 내일은 늦으리'에서 재공개되었다.
두 번째 앨범<DEUXISM>은 전편에 비해 음악적으로 성숙함을 보이고 다양한 시도로 완성도를 높이고 대중적으로 성공한 앨범으로 '우리는'이 가요 순위 1위에 오르고 후속곡 '약한남자'도 나름 히트를 했다.
듀스 3집 <FORCE DEUX> 는 마지막 정규 앨범으로 타이틀곡 '굴레를 벗어나'이다. 듀스의 앨범 중 최고의 명반으로 평가받으며, 한국 대중음악 명반 순위에서 늘 빠지지 않는 앨범이다. 이앨범이 주목받는 이유는 놀라운 앨범 디자인뿐만 아니라, 듀스의 음악성을 집대성한 압도적인 앨범의 완성도에 있다. 랩댄스 뮤직에서 대중성과 음악성을 함께 수반한 탁월한 가사와 멜로디, 해외 믹싱으로 완성된 세련되고 퀄리티 높은 사운드, 인트로부터 아웃트로까지 완벽한 곡 밸런스부터 한국 힙합의 뿌리가 돼버린 랩의 완성도까지. 거기에 서태지에 밀려 항상 저평가 받았던 2인자의 서러움마저 앨범에 녹여내면서, 훗날 서태지를 능가하는 당대 최고의 랩댄스 뮤직 앨범으로 극찬 받는 앨범이 되었다.
노이즈는 1992년 10월 데뷔앨범 <Sound Shock>을 발매하여 90년대 중반을 대표하는 X세대 아이돌로 활동하였다. 보컬을 강조한 가볍고 달달한 듣기 편한 댄스곡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많은 인기를 끌었다. 1집 데뷔곡 '너에게 원한 건'이 1993년 가요톱10에서 골든컵을 수상하면서 단번에 인기 그룹으로 떠올랐다. 후속곡인 '변명'도 1위 후보에 여러 차례 오르며 매우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노이즈는 미성이면서도 독특한 발성을 가진 홍종구의 보컬을 중심으로 듣기 편한 음악을 추구하며 다른 댄스가수들과의 차별성을 보이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1994년 2집<Noise 2>을 발매하여 타이틀곡은 '내가 널 닮아갈 때'로 활동했지만 전작과 다른 미디엄 템포 중심의 음악 때문인지 1집보다는 인기가 다소 주춤했다.
1995년 3집<3rd Revolution>을 발매하면서 역대 최고의 인기를 얻었으며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면서 95년 여름을 완전히 장악했다. 특히 김창환이 작곡한 '상상속의 너'는 가요톱10에서 2번째 골든컵 수상의 영예를 안겨 주었고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도 4주 연속 1위를 하는 등 상승세를 달렸다. 거기에 후속곡으로 거의 동시에 활동한 '어제와 다른 오늘' 역시 큰 인기를 얻었고 김창환 표 특유의 멜로디에 노이즈의 음악적 색깔을 가장 잘 대변하던 레이브 스타일로 완성도 높게 편곡하여 타이틀곡 '상상속의 너' 못지 않게 큰 인기를 얻었다. 두 곡의 쌍끌이 효과를 한 덕분에 3집 앨범 활동은 그야말로 노이즈의 최전성기를 대변할 정도로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1995년 11월 발표한 4집<Breakin' The Noise>은 처음 타이틀곡이었던 '이젠'과 후속곡 '홀로서기'를 가요 차트 10위 권 안에 올려 놓으면서 순항했다. 1996년 홍종호가 탈퇴하고 3인조로 개편되어 활동했던 5집<Unchangeable>에서는 '성형미인'이라는 곡으로 성형 문제를 공론화했으며 가요톱텐 기준으로 6위까지 오르면서 선전했다. 1998년 한상일이 빠지고 그룹의 축이던 홍종구와 천성일만 남아 6집 <안티 노이즈>라는 앨범으로 기존의 노이즈의 이미지에서 탈피를 선언했으며, 이전의 발랄한 분위기 곡에서 강렬한 비트 형식으로 사회비판적인 메세지를 담은 '피그맨'을 불렀으나 별다른 반향 없이 대중의 무관심 속에 잊혀졌다.
https://youtu.be/3NUaXU1d-NY?list=RD3NUaXU1d-NY
H.O.T는 1996년 9월 7일에 데뷔한 대한민국 아이돌 문화의 시발점인 그룹으로 음악과 멤버 구성에서부터 패션, 활동 방식, 팬클럽 등 H.O.T.가 하는 모든 것들이 아이돌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가요계의 판도를 바꾸었다. 데뷔하자마자 신드롬을 일으켰고기사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이들의 인기는 하나의 문화현상, 사회현상이었다. 1996년 9월 1집 타이틀곡인 '전사의 후예'는 학교폭력을 주제로 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어서 11월 30일부터 후속곡으로 활동한 '캔디'가 두 달간 1위를 하며 메가히트급으로 대박이 나면서 최정상의 인기를 거머쥐게 되었고, '널 사랑한 만큼', '늑대와 양', '행복', 'We are the Future', '자유롭게 날수 있도록', '열맞춰', '빛', '우리들의 맹세', '아이야', '투지', '환희', 'Wedding X-Mas', '축복', 'Outside Castle', 'For 연가'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네 개의 음반이 연속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 5집은 올프로듀싱을 하며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보이 그룹으로 성장하였다.
https://youtu.be/07MQUzKhnI8?list=RD07MQUzKhnI8
젝스키스는 활동 당시 H.O.T.와 함께 가요계 아이돌 돌풍의 쌍두마차였으며, 아이돌 팬덤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후반에 활동한 1세대 아이돌로 3년이라는 짧은 활동 기간동안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줄곧 정상권에 있었고, 다수의 음악 방송 1위를 비롯해 각종 가요 시상식 본상은 물론 98년 서울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정상급 아이돌이었다. 대중적인 컨셉과 노래로 팬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3년간의 짧은 활동이었지만 정규 앨범만 5장으로 각 앨범당 수록곡까지 2~3곡은 기본으로 히트를 쳤다. 3집의 경우, 아이돌 가수 중 최초로 한 앨범에서 3곡이 지상파 1위를 차지하는 신기록을 세운다. 립싱크가 많았던 활동 당시에도 격한 안무속에서도 라이브 무대가 많았으며 무리 없이 소화하기도 했다. 그중 1997년 '폼생폼사'와 '기사도', 1998년 '무모한 사랑', '지금이야', 'Road Fighter', '커플', 1999년 'Com' Back '등은 시간이 지나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젝스키스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타이틀곡으로 활동하지 않은 앨범 내 수록곡 중에도 명곡이 많은데, 특히 '기억해줄래', '너를 보내며', '예감'과 같은 미디움 템포의 발라드들이 많이 꼽힌다.
https://youtu.be/UZ3NPK3Uh9A?list=RDUZ3NPK3Uh9A
신화는 1998년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하였고, 데뷔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룹이 해체하거나 멤버의 탈퇴 및 교체가 없었던 대한민국 최장수 아이돌 그룹이다. 2017년 기준으로 13장의 정규앨범과 7장의 비정규 앨범을 발표하여 대한민국 댄스 그룹 최다 정규앨범 발매 기록을 수립하였다.
1998년 4월 데뷔앨범을 발매하였으며 타이틀곡 '해결사'로 활동하였다. 1999년 4월 2집을 발매하였으며 타이틀곡 'T.O.P' 활동으로 1999년 6월 8일에 음악방송(KBS 뮤직뱅크)에서 첫 1위를 했다. 그룹 활동과 개인 활동을 병행한 최초의 아이돌 그룹이자 개인활동으로 대박을 친 몇 안되는 아이돌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의 개인 활동이 용인되지 않던 시절 멤버 개개인이 솔로 음반, 예능, 드라마, 광고 등 다양한 연예 분야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었고, 2000년대 중반에는 방송만 틀면 신화 멤버가 나온다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왕성한 미디어 활동을 보였다. 트렌드에 절대 뒤쳐지지 않으면서도 신화만의 음악적 색깔을 잃지 않는 것이 강점. 신화를 대표하는 장르는 화려한 사운드의 댄스 음악으로, 댄스를 유독 부각했던 1세대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퍼포먼스로 가장 유명하다. 퍼포먼스 측면에서 높은 완성도와 이색적인 시도로 좋은 평가를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댄스 음악을 하는 그룹도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사례이다.
https://youtu.be/FdeGnQqw_To?list=RDFdeGnQqw_To
S.E.S는 1997년 11월 데뷔한 한국 가요계에서 댄스 음악을 하는 걸그룹의 시초라고 할수 있다. 데뷔와 동시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면서 단숨에 인기 스타로 급부상하였다. 1집 타이틀곡 'I'm Your Girl'은 이제 갓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로 대성공하였다. 후속곡 'Oh, My Love'로 연속 히트 행진을 이어나갔는데 이장우의 '널 만난 이후'를 리메이크한 'Oh, My Love'는 힙합적인 느낌과 의 예쁘장한 화음이 더 해져, 사랑스럽고 더 매력적인 곡으로 바뀌었다. 1998년 2집 타이틀곡 'Dreams Come True'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외국곡을 차용한 유로 댄스팝으로 신비스럽고 몽환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하여 청순을 극대화한 요정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대히트를 하게 된다. 후속곡인 '너를 사랑해'까지 대중적으로 큰 히트를 거두면서 걸그룹의 선두주자로 자리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1999년 발매한 3집에서 타이틀곡 'Love'는 첫 사랑이라는 감정의 달콤함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진실해지고 단단해지는 소녀의 감성을 오로지 소녀의 시선으로 표현한 노래이다. 3집으로 자신들의 가수 커리어를 또 한번 갱신하는데 발매 3일만에 55만장이 팔려나가 2020년 블랙핑크를 제외하고 걸그룹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걸그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00년 발표한 4집은 'Be natural'을 시작으로 MISIA의 곡을 리메잍크한 '감싸 안으며', 'Story'에 이르기까지 이 앨범으로 정상급 걸그룹의 위치로 각인되는 저력을 보여줬다. KBS2 뮤직뱅크에서 3주 연속 1위를 한 가수에게 주어지는 골든컵을 걸 그룹으로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수상했다. MBC 음악캠프에서는연속 3주 1위를 차지하며 당시 음악캠프에서 3주 연속 1위를 한 가수에게 주어지는 킹카(King of the Camp)를 걸 그룹으로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수상하게 되었다. 2002년 발매한5집의 타이틀곡 'U'는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겠어라는 능동적이고 당당한 여성상을 담고 있는 노래며 컴백한 지 1주일 만에 1위를 휩쓸었다. 이 당시는 1세대 3대장 여자 그룹이 활동시기가 겹쳤던 기간이었는데 베이비복스의 '우연', 핑클의 '영원'이 있었다.
핑클(FIN.K.L)은 1998년 5월에 1집<Fine Killing Liberty : Blue Rain>을 발매하여 타이틀곡인 R&B 발라드곡 'Blue Rain'으로 데뷔하였다. 차별성을 위해 R&B 그룹을 표방하고 청순한 미모와 뮤직비디오가 인기를 얻었으나 반응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귀여운 댄스곡으로 후속곡을 급하게 바꾸었는데 그 유명한 '내 남자친구에게'이다. 멤버들은 이 노래의 귀여운 컨셉에 모두 거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타이틀곡보다 좋은 반응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이 곡으로 지상파 음악차트 첫 1위에 올랐다. 1999년 5월 2집 <White>를 발표했으며 타이틀곡 '영원한 사랑'이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요정 컨셉의 절정을 이룬 곡이란 점이 히트 요소가 되었다.
1999년 11월, 스페셜 음반 2.5집을 발표했다. 타이틀곡은 '나의 왕자님께'라는 청순 컨셉 걸그룹답게 고백하는 내용의 발라드 형식으로 SBS 1위를 거머쥐었다. 1999년 연말엔 국내 걸그룹 역사상 최초로 가요대상을 두 번이나 거머쥐었고 걸그룹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대형 콘서트를 개최했다. 대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2집 앨범은 총 60만장에 가까운 판매량을 보여주면서, 핑클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남았다.
2000년 10월 3집이 발매되었다. 타이틀곡은 'Now'로서, 상당히 강도가 센 안무와 리듬감, 성숙함과 섹시함으로 무장하여 기존의 이미지를 뒤엎었다. 큰 인기를 누린 다음 연말부터 후속곡 'Feel Your Love' 활동으로 접어든다. 도도하고 섹시한 느낌이 묻어나는 곡이었으며, '교복컨셉', '힙합컨셉', '작업복컨셉' 등 무대마다 각양각색으로 변신하는 의상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메인인 '스쿨룩'이 화제를 모았다. 2001년 4월 리메이크 앨범인 3.5집으로 컴백, '당신은 모르실거야'를 부르며 활동을 이어 나갔다. 2002년 3월 8일 4집 앨범을 발표했다. 타이틀곡은 '영원'이었다. '영원'은 SBS에서 왕중왕 타이틀을 다시 한번 안겨 주었다. 당시 유행하던 미디어 템포 발라드풍 노래로 SBS 인기가요에선 핑클이 1위를 차지했다. 2002년을 끝으로 핑클의 완전체 활동은 사실상 끝을 맺었다.
베이비복스는 1997년 정규 1집 <EQUALIZEHER>로 데뷔 했으며 타이틀 곡 '머리하는 날'로 활동했다. 1998년 9월 15일, 2집 앨범을 발표하며 컴백한다. 2집 타이틀 곡 '야야야'는 김형석 작곡의 대중적인 댄스 팝 장르로 새롭게 재정비 된 베이비복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곡이었다. '야야야'는 발매 2~3주만에 각종 가요 차트 10위안에 들며 놀라운 속도로 상승세를 보였고 SBS 인기가요에서는 최고 3위까지 랭크되며 인기몰이에 성공한다. '야야야'가 성공하면서 S.E.S.와 핑클이 양분하던 걸그룹 시장에 새로운 혜성처럼 등장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았다. 2004년까지 한국에서 총 8장의 음반을 발표해 1세대에선 디바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정규 앨범을 발표한 그룹으로 20세기에 데뷔한 1세대 기준 다른 아이돌 걸그룹에선 볼 수 없는 보컬, 댄스, 랩 파트뿐만 아니라 비주얼까지 모두 섭렵하는 21세기판 완성형 아이돌 구성을 갖춘 그룹이었다. 그리고 1세대 아이돌 중 가장 오래 활동했다. 다만 인기와 별개로 섹시 컨셉을 자주 내세우다 보니 후술되어있듯 안티들에게 집중 공격을 받는 그룹이기도 했으며, 연장선상에서 국내외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던 2004년 이하늘 망언 사건으로 팀 활동을 일시 중단하였으며 이후 2006년 2월 각자의 길을 선언했다. 멤버 전원이 모두 가수와 배우를 겸업하거나 배우로 전업했다.
14부로 이어집니다.
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중음악의 이해』(김창남 외,한울,2012)
『아이돌』(이동연 외,이매진,2011)
『한국대중가요사』(이영미,민속원,2006)
『한국 팝의 고고학』 1·2(신현준 외,한길사,2005)
『식민지시대 대중가요 연구의 쟁점과 그 의미』(이영미,김시업 외)
『 근대의 노래와 아리랑』(소명출판,2009)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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